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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인턴 뽑아놓고 나 몰라라

강진구 입력 2018.11.15. 20:22 수정 2018.11.16. 08:34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린 인턴 박람회에서 대학생이 공고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냥 방치하는 거죠.”

서울 소재 대학 4학년 A(25)씨는 지난달 말까지 수도권 한 시청에서 6개월간 청년인턴을 했다. 취업 전 돈을 벌면서 실무까지 익힐 수 있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출근한 첫날, 담당 공무원을 만난 자리에서 맥이 탁 풀렸다. “정해진 자리는 없고, 1층 로비에서 일하면 된다.” 자리가 없으니 A씨가 맘놓고 쓸 수 있는 컴퓨터나 전화도 당연히 없었다.

게다가 맡은 일도 알던 것과 달랐다. 공고와 근로계약서에는 분명 사무보조라고 명시돼 있는데, 전통시장 홍보가 주어진 일이었다. A씨는 “이런 부당함을 항의해도 시청 직원은 ‘채용된 것에 감사하라’고 대꾸했다”며 “사정이 비슷한 인턴들이 함께 ‘적어도 업무는 할 수 있게, 탁자라도 설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마저 묵살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청년인턴제도가 세금만 축내는 생색내기 정책으로 전락하고 있다. 사전 공고된 업무랑 관계없는 허드렛일에 동원되는가 하면, 출근도장만 찍으면 이후 무슨 일을 해도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사실상 방치된 인턴들이 허다하다. 매달 150만~200만원이 이들에게 지급되지만 고용한 기관은 물론 고용된 청년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15일 본보 기자가 만난 공공기관 인턴들은 대부분 잡무에 동원되면서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다 퇴근하는 이가 있었고, 청소만 하다 집에 간다는 인턴도 있다. 그나마 업무가 주어지는 날도 출근한 뒤 일손이 부족한 부서로 갑작스레 배치되는 게 대부분이라고 하소연한다. 지난해 말 서울 소재 공공기관에서 청년인턴 프로그램을 수료한 조모(28)씨는 “전공에 맞는 부서를 지원해 합격했지만, 입사 후에 이와 전혀 무관한 부서로 발령받았다”며 “회의실 청소나 물건 재고 파악 등 실무경험과 동떨어진 단순 업무에만 내몰렸으며,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공공기관 체험형 청년인턴_신동준 기자/2018-11-15(한국일보)

인턴은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 ‘딴짓’을 할 수밖에 없다. 비록 인턴으로 출근은 하고 있지만 이들도 사실은 취업준비생이라 책을 읽거나, 취업 자기소개서를 작성한다. 9월부터 한 달간 공기업 인턴생활을 하다 다른 회사에 취업한 정모(27)씨는 “입사 준비를 하며 시간을 억지로 때웠다”고 밝혔다.

고용 기관은 딱히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청년인턴 선발은 했으나, 정작 이들에게 맡길 일이 없어서다. 지시할 일이 없으니, 공부를 하거나 딴짓을 해도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잠깐 있다가 갈 사람인지라 업무를 맡기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중앙정부도 손 놓고 있기는 매한가지. “공공기관이 자율적으로 인사운용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별도로 개입하진 않는다”(기획재정부)거나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뽑는 인턴에 대해 관여할 권한이 없다”(행정안전부)는 말뿐이다.

청년인턴 선발 인원은 증가 추세다. 2016년 1만명에 육박하며 매년 늘더니 올해는 9월 말까지 이미 1만261명이 뽑혔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연말까지 5,300명이 추가된다. 여기에 지자체 자체 선발 인원까지 합하면 2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모두 정치적 판단에 따라 청년인턴을 급히 뽑은 탓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며 “정부가 청년 취업률을 높이겠다면서 일자리를 급조하는 건 몸이 아프다고 아편을 복용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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