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때문에 버텼는데 죽고 싶단 생각도"..'청년내일채움공제'가 족쇄로

김지환 기자 2020. 10. 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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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상사가 본인도 주체를 못할 정도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너무 심하면 사과하기도 하고, 다시 폭언을 하는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회식도 많았는데 직원들 아무도 회식에 빠질 수 없었습니다. 첫 회사이고, 청년내일채움공제 때문에 최소 2년은 버티자며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지냈습니다. 상사의 괴롭힘과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한 직원은 정신과 진료를 다녔습니다. 견디다 못해 상사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에 대한 괴롭힘과 따돌림이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상사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고 말았습니다.” (청년 노동자 A씨)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해 만기가 되어 갑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에 알아보니 제가 최저임금 미달로 월급을 받았습니다. 화가 나서 그만둔다고 하니 회사에서는 신고하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습니다. 신고하면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철회돼 목돈을 못 받게 되더라고요. 최저임금 미달이면 아예 가입이 안 되는데 회사에서 거짓으로 서류를 작성해 신청했습니다. 정말 신고하면 1600만원을 못 받게 되는 건가요?” (청년 노동자 B씨)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출퇴근 거리가 3시간 넘게 걸리는 공장으로 보내서 자진퇴사하게 만듭니다. 회사는 나라 지원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을 권고사직하지 않고, 공장으로 보냅니다. 근로계약서상 필요에 따라 근무장소 및 업무내용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랍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때문에 버티고 있는데 정말 너무 힘듭니다. 회사는 대표의 친인척을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시켰습니다. 이를 신고하고 퇴사하면 내일채움공제를 유지할 수 있나요?” (청년 노동자 C씨)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한 청년 노동자가 수년간 근속하며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기업과 정부가 돈을 보태 목돈을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청년이 2년간 300만원을 적립해 1600만원을 받는 ‘2년형’과 3년간 600만원을 적립해 3000만원을 받는 ‘3년형’이 있다.

문제는 이 사업이 직장 내 괴롭힘 등 불법적인 상황에서조차 청년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퇴사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진 퇴사할 경우 공제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기한을 채워야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청년 노동자 D씨는 “스트레스가 심해서 가슴도 두근거리고, 일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어떨 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가족들이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아니면 어디서 그런 목돈을 받을 수 있겠냐고 해서 버텼는데,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청년 노동자 E씨는 “회사에서 매일 집단 괴롭힘을 받은 지 1년이 넘었다. 정신과 진료도 받고 있다. 너무 억울해서 퇴직사유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쓰려고 하는데 그럴 경우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유지될 수 있나? 청년내일채움공제를 받아야 빚을 갚을 수 있다. 너무 억울한데 방법이 있을까”라고 밝혔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 119’는 11일 청년내일채움공제 등과 관련된 노동자들의 제보 내용을 공개했다.

직장갑질 119는 “내일채움공제가 ‘노예계약’이 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재가입 사유를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사업장의 휴·폐업, 도산, 권고사직, 임금체불, 고용보험료 체납, 기타 지방관서장이 재가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퇴사한 후 6개월 이내에 재취업할 것을 전제로 1회에 한해 재가입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직장갑질 119는 “직장 내 괴롭힘 등 사업주의 귀책사유가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귀책사유가 아닌 한 재가입 요건에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며 “노동자 본인의 귀책사유가 아닌 불가피한 사유로 이직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이유로 두 번 다시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매우 가혹한 처사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가입 기간과 횟수 제한을 폐지하거나, 확대해야 한다. 사업장이 노동자에게 부당대우를 일삼으면서 노동자를 묶어두는 무기로 이 제도를 악용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내일채움공제 중도 해지 인원은 2만3933명으로, 전체 가입자(9만8572명)의 24.3%에 달했다. 4명 중 1명이 중도 해지한 것이다.

윤 의원은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장에서 2~3년의 계약기간을 볼모로 청년 노동자에게 불합리한 대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며 “이 같은 불합리한 대우가 중도해지율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전수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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