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격 받은 뒤 재신청 사실상 불가..더 높아진 '난민 인정' 벽

이보라 기자 입력 2020. 12. 28. 17:08 수정 2020. 12. 2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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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심사 부적격 결정제도 신설' 난민법 입법예고

[경향신문]

중대 사정 없으면 신청 제한
이의신청·행정심판도 못해
체류연장 등 사유는 ‘불인정’
올 6088명 신청 42명 인정
“더 신속히 추방하려는 법안”
난민 보호 인권단체들 비판

법무부가 과거 난민인정 신청을 했다가 부적격 결정 등을 받은 사람이 재신청할 경우 심사에서 제외하는 ‘심사 부적격 결정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의 난민법 개정안을 28일 입법예고했다.

체류연장 목적 등을 사유로 한 난민 신청에 대해선 ‘명백히 이유 없는 신청’으로 규정해 불인정 결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큰 틀에서 난민 심사·인정 건수를 줄이겠다는 방침으로 풀이된다. 인권단체들은 “대부분의 난민 신청자를 남용적 신청자로 낙인찍은 기존 행정 관행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더 신속히 난민을 추방하겠다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입법예고된 난민법 개정안을 보면 법무부는 중대한 사정 변경이 없는 난민 재신청을 막기 위해 심사 부적격 결정제도를 마련했다. 과거 난민인정 신청을 했다가 부적격 결정 또는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은 사람이 재신청하면, 원칙적으로 신청 2주 내에 ‘난민인정 심사 부적격 결정’ 대상자로 분류되는 제도다. 대상자가 되면 난민 신청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이의신청·행정심판도 제기할 수 없다.

또한 난민 신청 사유가 난민법상 난민 정의에 해당하지 않으면 ‘명백히 이유 없는 신청’으로 명시해 불인정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체류연장 목적이나 경제적 이유 등을 사유로 한 난민 신청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불인정 결정을 받은 사람이 이의신청을 해도 2개월 이내에 신속하게 심의·결정한다.

난민 신청자가 허가 없이 해외로 출국하면 난민 신청이나 이의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간주했다. 허위서류 제출 등으로 난민 신청을 알선·권유하는 사람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난민 심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 지정 거점기관에서 난민 신청을 받고 심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난민 신청 단계부터 전담 공무원이 담당하고 통·번역 지원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 면접 과정에서 만들어진 녹음자료의 열람과 복사를 허용해 난민 신청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기로 했다. 난민 이의신청을 심의하는 난민위원회 위원을 종전 15명에서 최대 50명까지 확대하고, 심의 방식도 전원회의에서 분과위원회 방식으로 개편한다.

난민인권네트워크는 이날 성명을 내고 “입법예고된 난민법 개정안은 난민혐오에 기반한 반인권적 법안”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심사 부적격 결정제도의 경우 “재신청한 난민들은 서류로만 심사해 원칙적으로 기각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명백히 이유 없는 난민 신청’ 명시에 대해선 “법무부가 잘못 이해한 기준에 따라 거부해왔던 대부분의 난민 신청을 ‘명백히 이유 없다’라고 낙인찍는 것”이라고 했다. 난민을 구별하기 위해선 ‘박해 위험’ 여부를 파악해야 하지만 이와 상관없는 체류연장 목적, 경제적 이유 등을 근거로 난민 여부를 심사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난민인권네트워크 소속 이일 변호사는 “우연히 시민사회의 도움을 받게 된 일부 난민을 제외하고 대부분 1차 심사에서 신청이 기각된다. 하루에 1000여건을 서면 심사하는 난민위원회는 온전한 구제절차로 기능할 수 없다. 이 같은 현실적 전제를 해결하지 않고 재신청을 막는 것부터 제도를 바꾼다면 대부분의 난민들은 사지로 추방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1~9월 난민 신청자 수는 6088명이지만 인정자 수는 42명에 그쳤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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