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휴하자더니 그대로 베껴".. 스타트업 뒤통수 때리는 대기업

이은영 기자 2022. 7. 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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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스타트업 서비스 표절 논란
LG U+, 네이버도 기술 탈취 논란
"투자·제휴 제안하며 접근, 정보 빼가"
서비스를 출시할 무렵, 대기업으로부터 업무제휴 제안이 왔다. 이후 꾸준히 제휴 논의를 해오다 파트너사 등록까지 했는데, 어느 날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서비스를 ‘국내 최초’라며 내놓더라.

최근 KT(030200)가 출시한 인공지능(AI) 음성 합성 서비스 ‘KT AI 보이스 스튜디오’를 두고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AI 스타트업 ‘네오사피엔스’가 수년 전 출시한 ‘타입캐스트’를 베꼈다는 것이다. KT의 AI 보이스 스튜디오는 대본을 입력하면 감정이 담긴 AI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서비스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T는 지난 19일 이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국내 최초의 감정 더빙’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김태수 네오사피엔스 대표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가 무려 3년 전부터 하던 서비스와 같은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국내 최초라고 한다”며 “황당하다”고 밝혔다.

위는 네오사피엔스가 2019년 출시한 AI 음성 합성 서비스 타입캐스트. 아래는 KT가 출시한 KT AI 보이스 스튜디오. /각사 홈페이지 캡처

네오사피엔스의 타입캐스트는 AI 기반의 음성합성 서비스로, 가상 연기자를 설정하고 대본을 입력하면 가상 연기자의 특성이 담긴 음성으로 변환시켜주는 서비스다. 감정에 따른 톤 조절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2019년 출시돼 국내 대기업 등 110만명의 이용자를 두고 있다. 2018년에 관련 논문과 특허를 냈다.

네오사피엔스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유사한 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타입캐스트 서비스 페이지를 보면 왼쪽에 음성의 언어, 성별, 연령 등 카테고리가 정렬돼 있고 카테고리를 선택하면 이에 부합하는 가상연기자 목록이 오른쪽에 카드 형식으로 배열된다. 각 카드에는 가상연기자의 캐릭터 일러스트와 이름, 언어 등이 표기돼있다. KT AI 보이스 스튜디오도 카테고리 순서만 다를 뿐 이와 같은 방식을 따랐다.

네오사피엔스 관계자는 “타입캐스트는 세상에 없던 서비스인 만큼 UI와 UX(사용자경험) 모두 다 직접 만들었다”며 “다 비슷비슷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에는 우리 같은 UI를 가진 서비스는 우리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KT 요청으로 파트너사 등록도 한 적이 있다”며 “업무제휴의 결과가 표절이라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KT는 UI를 일부 수정했다. 그러면서도 서비스를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니라 ‘휴멜로’라는 스타트업에 의뢰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멜로 측은 “기술에만 집중하다 보니 UI, UX에 대한 표절 가능성을 신경쓰지 못했다. 우리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KT는 이 서비스를 ‘국내 최초’라고 주장한 데 대해선 문자뿐만 아니라 음성도 입력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서비스와 다른 점이라고 했다.

KT는 자사 AI 보이스 스튜디오가 네오사피엔스의 타입캐스트 UI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자 이같이 UI를 수정했다. /홈페이지 캡처

대기업의 스타트업 표절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LG유플러스(032640)는 스타트업 생활연구소의 ‘청소연구소’ 애플리케이션(앱) UI와 UX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올 초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됐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말 집안일 플랫폼 ‘홈인’ 앱을 출시했는데 앱 내 서비스 기능과 UI·UX가 청소연구소 앱과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이보다 앞선 2019년 생활연구소에 전략적 투자를 전제로 한 업무협약을 제안했다. 이후 아홉 차례 논의가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생활연구소로부터 청소연구소 사업 관련 주요 자료도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는 결렬됐고 1년 4개월 뒤 ‘홈인’이 출시됐다. 논란이 일자 LG유플러스는 앱 일부를 수정했다.

네이버(NAVER(035420)) 자회사 ‘라인’은 베트남에 지역 기반 중고거래 앱 ‘겟잇’을 출시하면서 ‘당근마켓’ 앱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김재현 당근마켓 대표는 당시 “겟잇이 당근마켓의 메인화면과 동네 인증화면, 동네 범위 설정과 프로필, 매너 평가까지 그대로 베껴서 만들었다. 작은 스타트업이 4년 동안 밤낮 없이 고민해 만든 서비스를 몇 개월 만에 베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네이버 측에서 투자나 인수 등을 거론하며 두어 번 찾아온 적은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표절이 의심돼도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 등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스타트업과 대기업은 자본력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소송으로 가면 대기업이 오히려 유리하다”며 “기술적인 특허 침해는 어느정도 법적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앱 UI의 경우 특허가 있는 것도 아니고 표절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아 마땅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나마 위안을 삼자면 대기업이 표절을 하면서까지 시장에 뛰어들면 시장 규모가 커지는 뜻밖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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