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 연합작전으로 기후 위기 맞서는 공립 중학교 [탄소 후 미래]
[노광준 기자]
▲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국사봉중학교 |
ⓒ 국사봉중학교 |
요즘 학생들의 말이다. 그런데 학교 수업이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면 어떨까?
1교시 국어, 플라스틱에 관한 시를 써보기.
2교시 수학, 국어 시간에 쓴 시를 갖고 순환소수의 순환마디를 이용하여 음악 만들기
3교시 음악, 작곡한 노래를 감상하고 불러 보기
멀리 북유럽 학교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국사봉중학교 수업이다. 이 학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지난 22~23일 교육부가 주최하고 충청북도교육청이 주관한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행사에서였다.
국제행사인만큼 북유럽이나 독일의 앞서가는 사례를 얻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온라인 영상을 주시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북유럽도 독일도 아닌 국사봉중학교였다. '국수영사과'부터 '기술과 가정, 음미체'까지 모든 교과목들이 유기적으로 탄소 중립을 향해 돌아가면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학교가 공립학교라는 점이다.
"저희가 공립이다 보니 선생님들도 매년 바뀌세요. 그런 가운데 어떻게 환경 교육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에서 교사 투표를 통해 확정했어요. 모든 학년 모든 교과가 참여하는 생태전환교육을 하기로."
이 날 발표를 한 국사봉중학교 최소옥 교사의 말이다. 최 교사의 소속 부서도 독특했다. 생태전환교육부. 2011년 혁신학교를 준비하던 교사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시작된 이 학교의 환경 교육은 학교 주변 '성대골 에너지 전환마을'을 만나며 학교협동조합 설립과 교내 햇빛발전소 건립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2018년 12월 교사투표를 통해 전학년 전교과 '생태전환교육'으로 체계화됐다.
▲ 국사봉중학교 2학년 1학기 수학 교과 수업 내용.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발표물. |
ⓒ 국사봉중학교 |
국사봉중학교의 수학 시간은 이렇게 시작한다. 각자 준비해온 공공요금 고지서를 꺼낸다. 그 안에 표시된 한 달 전기요금부터 수도요금, 가스비, 교통비 등을 확인해 하나하나 탄소 발자국 계산기에 입력해 본다. 우리 집이 한 달 동안 이산화탄소를 어느 정도 배출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나무 몇 그루를 심어야 할지도 계산해 본다.
여기에 한 차원 더 높은 수학이 들어간다.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 집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것인지 '연립방정식'을 세워 풀어보자. 2학년 1학기 수학 수업 내용이다.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전에는 화장실 불이 켜져 있어도 신경도 안 썼지만 지금은 꼭 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면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 아닌가?
▲ 국사봉중학교 도덕 교과 주제 탐구 사례.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발표물. |
ⓒ 국사봉중학교 |
"안녕하십니까? 저는 옥수수 수염차를 즐겨 마시는 학생입니다. 평소에 옥수수 수염차를 즐겨 마시면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비닐 포장지의 크기와, 불필요하다고 생각된 문양입니다..."
역사 시간, 선생님이 '종이의 역사'를 가르친다. 베어지는 나무와 탄소 배출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한지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한지에 종이 절약 실천에 대한 다짐을 적는다.
우리 마을을 이렇게 바꿔나가 보자
학생회 자치회의, 안건은 채식 급식 식단 짜기였다. 고기반찬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친구들이 어떻게 채식 급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할지 학생들끼리 머리를 모아 최적의 레시피를 짜 본다.
교사들은 관련 교육내용을 다양한 교과 안에서 풀어나갔다. 사회 시간에는 '온실가스와 채식', 전 세계에 일고 있는 '고기 없는 월요일' 캠페인을 소개한 후 카드 뉴스를 만들었고, 가정 선생님은 '로컬푸드'를 수업내용으로 준비했고, 국어 선생님은 '생태에너지 관련 책 읽고 설명문 쓰기'를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은 학기 말 생태축제에서 채식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2학년 1반에서 '콩고기 햄버거 만들기'를, 학생회에서는 '채소력 테스트'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육해공 연합작전으로 기후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 문제가 어느 한 교과로 풀어나갈 수 없는,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문제잖아요. 실천이 필요하고, 그러기 때문에 여러 교과가 함께 아이들이 이 문제를 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최소옥 교사
기후 교육 관련해서 유명한 말이 있다. 생각은 글로벌하게, 실천은 지역에서. 국사봉중학교도 마을에서의 실천을 강조한다. '지구가 위험하다, 그래서 어쩌라구'가 아니라 '그래서 우리 마을을 이렇게 바꿔나가 보자'라는 식의 지역 연계형 실천 과제를 제시한다.
▲ 국사봉중학교 3학년 사회 수행 평가 사례.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발표물. |
ⓒ 국사봉중학교 |
"지금 교과서 안에는 직접적으로 기후위기에 관한 언급이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니 관심을 가진 교사더라도 교과서 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 부담이 될 수 있죠. (저희 경험으로는) 교과서 핵심 내용(성취기준)을 풀어나가는 중간 매개로 기후 문제를 활용하거나 채식 관련 토론 등 활동까지 연계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교과서가 조금 바뀌면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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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유튜브 영상 (충청북도 교육청, 2022. 3.23) 최소옥, '마을과 함께하는 햇빛학교 프로젝트'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컨퍼런스 PPT 자료집, 2022. 3.22) '[KBS 다큐온] 연립방정식으로 우리집의 탄소배출량을 계산해 볼 수 있다면? (국사봉중학교 환경교육 사례)'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유튜브채널, 2021.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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