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 전락한 성과급 논란..2030 "개인 아닌 집단 성과가 공정한가"

배준희 입력 2022. 2. 17.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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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연말 연초만 되면 성과급 이슈가 여론을 달군다. 성과급 규모와 산정 기준을 두고 2030 MZ세대를 중심으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성과급은 업무 성과에 따라 임금을 달리 지급하는 방식을 뜻한다. 크게 성과를 기반으로 기본급 자체를 달리 지급하는 방식, 기본급이 아니라 보너스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 사업부 등 집단 수준에서 목표 성과를 달성했을 때 집단 성과급을 지급하는 형태 등이 모두 성과급 제도에 포함된다. 가령, 국내 대기업 집단에서 흔히 목격되는 성과배분제, 이익배분제, 스톡옵션제 등은 집단 성과급이다.

최근 재계에서 연일 논란이 들끓는 제도는 집단 성과급제다. 논란의 단초가 됐던 것은 지난해 초 SK하이닉스 4년 차 김 모 사원의 이메일이 외부로 알려지면서다. 김 모 사원은 지난해 1월 29일 이석희 사장과 전 임직원에게 ‘입사할 때 인사 담당자가 삼성만큼 임금과 성과급을 챙겨줄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가’라는 이메일을 보내 공개 항의했다. SK하이닉스발(發) 성과급 논란의 시작이었다.

삼성그룹 등 국내 대표 기업에서 집단성과급 산정의 근거로 삼는 지표로 널리 알려진 것은 경제적 부가가치(EVA)다. 경제적 부가가치는 세후영업이익(NOPAT)에서 가중평균자본조달비용(WACC)을 차감한 것이다. 쉽게 말해, 기업이 채권자(부채)와 주주(자본) 몫으로 남겨둔 최종 이익(세후영업이익)만 볼 게 아니라, 지속 성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자본 조달의 기회비용을 뺀 것을 진짜 부가가치로 보자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재무지표로 여러 실증 논문에서 검증됐지만 MZ세대의 시각은 달랐다. MZ세대가 보기에 경제적 부가가치라는 재무지표는 기준이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라는 불만이 들끓었다. 예를 들어, 영업이익을 아무리 많이 벌었더라도 자본 비용이 증가한다면 경제적 부가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재무 부서 관계자는 “MZ세대 시선에는 사 측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돼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MZ세대, 자의적 기준에 불만

▷주요 기업 성과급 지표 손질

결국 SK하이닉스는 이익분배금 산정 기준을 경제적 부가가치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꿨다. 2006년 이후 처음 성과급 체계를 바꾼 LG화학은 기본급의 ‘200%+α’였던 성과급 상한을 최대 1000%로 늘리고 경영지표 성과를 일부 반영한다. LG전자는 기존에는 사업본부별로 매출액과 영업이익의 목표 달성을 기본 지표로 성과급을 차등 지급했는데 올해부터는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 달성도를 모든 사업본부의 성과급 산정에 적용한다.

재계에서 부랴부랴 성과급 기준을 바꾸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또 다른 논란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결국 성과급 재원은 기업의 핵심 이해관계자인 채권자와 주주 몫을 뺀 나머지 이익을 재원으로 마련하므로 그 그릇이 제한적이다. 가령, 지난해 올레드 TV 판매 덕분에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에서는 사 측의 성과급 기준 변경으로 보상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성과급 논란이 잇따르는 배경을 크게 2가지로 봤다. 첫째, 제조업 기반의 국내 대기업 성과급 체계는 대부분 집단 성과급이다. 우리 기업은 집단적인 경영 체제를 갖추고 개인의 성과보다는 조직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조직문화를 구축해왔다. MZ세대는 이런 문화가 달갑지 않다. 집단 성과 기반의 성과급은 무임승차라는 부정적인 외부 효과를 낳고 개인주의 성향이나 인정 욕구가 강한 MZ세대에게는 동기 부여 기제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종근 머서코리아 이사는 “고도 성장기에는 집단 성과급이 인재를 채용하고 장기 근속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인 제도였지만 노동 시장 변화와 R&D, IT 개발 등의 핵심 역량 중심으로 임금 경쟁이 과열되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둘째는 공정성 이슈다. 존 애덤스의 공정성 이론에 따르면 조직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과 기여, 보상 정도 등을 비교한 뒤 공정성 여부를 가늠한다. 이에 비춰, 작금의 MZ세대에게 집단적인 조직문화와 이에 기반한 성과급 체제만으로는 공정성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공정한 보상’의 저자 신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삼성그룹조차 고성과 부문의 저성과자가 저성과 부문의 고성과자보다 총 연봉이 커지는데, 이런 문제를 손대지 않고서는 대기업 성과급 논란은 연례행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처방 역시 중장기 관점에서 여러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난상 토론식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라는 진단이다. 앞서 박 이사는 “기업 측면에서는 보상 방식 다변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장기적인 성장의 가치를 내부 직원·외부 파트너들과 어떻게 공유할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기여를 어떻게 성과로 평가하고 보상으로 공유할지 등 성과·보상 패러다임의 대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창조적 혁신 자극하는 新성과급제 도입할 때

미 예일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은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조직혁신 전문가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성과급 논란이 지속되는 배경은.

A 핵심 이유는 성과급을 둘러싼 주변 요인과의 ‘일관성(Fit·Alignment)’ 문제다. 첫 번째는 그 조직이 추구하는 전략과의 일관성이다. 가령, 장기적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혁신이나 품질 기반의 기업이 단기 성과급을 채택하면 전략과의 일관성 부재로 위기에 빠진다. 두 번째는 보상 제도를 둘러싼 조직문화나 조직 구조, 직무 구조 등과의 일관성이다. 직무 구조에서 협력적 집단 작업 구조를 채택하는 기업의 경우 개인별 성과급을 채택하면 협력이 어려워져 일관성의 교란으로 경쟁력 위기가 초래된다. 세 번째는 성과평가 정확성과의 일관성이다.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별화는 무엇보다 성과를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Q 어떤 요인이 논란을 촉발한 단초가 됐나.

A 특히 집단주의적 조직문화와 구성원 간 일관성 부재가 논란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은 구성원들에게 조직에 대해 절대적 충성심을 갖고 조직 성과와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할 것을 요구했다. 과거에는 그 대가로 평생직장을 보장했다. 이게 바로 집단주의적 조직문화의 핵심 원리였다. 그런데 성과급의 기본 전제는 조직과 구성원은 성과와 보상을 서로 교환하는 거래 관계라고 보는 것이다. 구성원과 조직 간 관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찰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Q 기업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A 무엇보다 성과급이 각 기업의 전략과의 적합성에 따라 채택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 만약 성과급이 각 기업의 전략 실행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그다음으로 직무 구조와 조직 구조, 구체적 성과 평가 시스템과의 적합성과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각 구성원의 성과급 단위가 그 구성원의 권한 범위와 일치하도록 직무와 조직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당연히 정확성과 객관성 논란이 없도록 정교한 성과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어 구성원들이 성과급의 기반 원리와 각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각적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Q CEO에게 요구되는 경영 철학은.

A 최고경영진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현재’ 혹은 ‘미래’ 환경이 어떤 성과급을 요구하는지에 관한 이슈다. 가령, 아마존, 구글, 애플, 테슬라 등 글로벌 혁신 기업에서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과감한 시도, 내재적 동기 부여, 직무에 대한 높은 헌신과 몰입 등을 강조하는 ‘고몰입 인적 자원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고몰입 인사 제도는 실패를 권장하므로 조직의 단기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제도가 확산하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의 서구식 성과급은 기존 경쟁 우위를 지키고 확장하는 데 초점을 두고 정해진 과업에서 성과를 높이도록 유도했다. 기술 변화가 불연속적이고 상시적인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는 이런 성과급제가 오히려 경쟁력의 치명적 걸림돌이 된다. 미래 경쟁 규칙은 기존 경쟁 우위를 지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경쟁 우위를 남보다 먼저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 최고경영진 역시 창조적 혁신과 민첩성 등을 동기 부여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미래지향적 성과급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6호 (2022.02.16~2022.02.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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