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톡> '리코리쉬 피자', 1970년대를 위한 첫사랑의 찬가

김인구 기자 2022. 2. 1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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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첫사랑에 빠진 청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다. 감미로운 키스신? 아니다. 젊은 에너지의 상징인 ‘달리기’다. 이런 장면이 익숙하지 않은가? 여자친구의 감정을 확인한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펄쩍펄쩍 뛰거나, 남자친구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들켜버린 여자가 얼굴을 가리고 도망친다거나, 길거리 데이트 커플이 눈만 마주치면 약속이나 한 듯 한 방향으로 뛰거나 하는 것. 사랑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커플들의 흔한 증상인데, 이런 질주 본능은 묘한 쾌감을 준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리코리쉬 피자’는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샌퍼디낸드밸리를 배경으로, 폴짝폴짝 뛰는 첫사랑의 감정을 유쾌한 터치로 담은 영화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도 어김없이 뛰어다닌다. 기존 첫사랑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녀 주인공이 풋풋한 첫사랑에 빠지고 서로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회복되고 순수한 사랑은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1970년대의 정서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좀 차이가 있다. 1970년대가 어떠했기에 감독은 그때의 향수를 불러냈을까.

1970년대의 미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 속에서 자연 회귀를 주장하는 히피의 시대였고, 석유파동이 일어난 혼돈의 시기였다. 어느 시대나 자연과 도시화, 정치 이슈와 경제 문제가 충돌하기 마련이지만 1970년대는 전후의 혼돈이 마무리되면서 순수와 낭만, 삶의 새로운 가치가 피어나는 현대 사회·문화의 출발점이었다.

제목부터 이 시대를 향한 감독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리코리쉬 피자는 바이닐(레코드)을 뜻한다. 레코드판의 검은 색은 리코리쉬 캔디 색깔과 비슷하며 판의 모양은 피자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그대로 상호로 이용한 레코드 체인점이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 처음 생겼다. 따라서 리코리쉬 피자라고 하면 미국인들에게는 1970년대의 향수가 떠오르게 되는 셈이다.

그때 그 시절처럼 주인공들의 사랑도 순수하고 담백하다. SNS가 없는 시대이니 그리 복잡할 게 없고, 스마트폰이 없으니 음성이나 문자로 오해할 일도 적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덜하다.

16세 소년 개리 밸런타인(쿠퍼 호프먼)은 학교에서 우연히 알라나 케인(알라나 하임)을 발견하고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 겁도 없이 다짜고짜 친구가 돼 달라고 구애한다. 그러나 알라나는 개리보다 한참 누나인 25세의 숙녀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 같은 개리의 철부지 멘트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너 같은 어린애랑은 데이트하지 않는다”며 타일러 돌려보낸다. 그러나 아역배우의 자신감이 있는 개리는 알라나에 대한 마음을 굽히지 않는다. 비록 알라나가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새로 나온 물침대에서 영감을 얻어 물침대 장사를 시작한다. 그는 믿고 있다. 자신이 돈을 벌어 조금 더 어른이 되면 그녀가 자신만의 걸프렌드가 될 것이라고.

개리를 연기한 호프먼은 2014년 사망한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아들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닮았다. 이번 작품이 데뷔작이다. 연상의 알라나에 대한 열정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개리를 제 몸처럼 연기했다.

퍼스트 네임을 극중 이름으로 그대로 쓴 알라나 역시 장편 연기는 처음이다. 원래는 두 언니와 함께 자매 록밴드의 멤버다. 실제 나이는 31세. 유난히 날렵한 코에 찌푸린 미간이 전형적인 미인형은 아니지만 ‘볼매(볼수록 매력)’ 스타일이다.

1970년생인 앤더슨 감독은 이번 작품 각본도 다른 때처럼 직접 썼다. 그는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1996)부터 ‘부기 나이트’(1999) ‘매그놀리아’(2000) ‘데어 윌 비 블러드’(2008)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본과 연출을 동시에 수행해온 감독이다.

감독이 바라보는 1970년대의 사랑은 경쾌하고 유쾌하다. 섹스나 배신, 절망 따윈 없다. 우리도 그런 아름다운 때가 있었다는 듯 순수하고 낭만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카메오 같은 조연 배우들의 면모가 ‘쓸데없이’ 화려하다는 것. 숀 펜이 한국 배경의 출연작 ‘도곡산’을 외쳐대는 자아도취 배우로, 브래들리 쿠퍼가 항상 잔뜩 화가 나 있는 스타로, 그리고 존 마이클 히긴스가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데 일본 여자와 사는 사업가로 등장한다. 이들은 위트 담당이다. 담백한 러브 스토리이지만 감독이 곳곳에 배치한 1970년대의 향수는 그걸 경험했건, 경험하지 못했건 보는 이에게 포근함과 편안함을 준다. 그래서 아마 감독도 비슷하지만 다른 이런 러브 스토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15세 관람가. 16일 개봉.

김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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