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NFT 아트가 진짜 돈 되려면 전용 미술관 있어야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입력 2022. 1. 14. 03:04 수정 2024. 3. 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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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 보면 도시마다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를 박물관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상당히 최근에 생겨난 건축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관은 전문적 용어로 ‘계몽적 미술관’이라고 하는데 그 원조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다. 18세기에 프랑스 왕은 베르사유궁으로 이사했고, 루브르궁은 왕이 소장한 미술품과 보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1789년에 프랑스는 시민혁명에 성공했다. 이후 혁명 정부는 왕정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을 보여주기 위해 1793년 왕의 보물 창고 격인 루브르궁을 시민에게 개방해 소장품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시민사회가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 되었다.

일러스트=백형선

값비싼 물건을 수집하고 소장하는 것은 문명 초기부터 있었던 인간의 본능이다. 인류는 농경 사회 이전 수렵 채집 시대에는 이동하면서 살아야 했는데, 그때도 장신구나 인형을 가지고 다닌 것을 볼 수 있다. 권력자일수록 더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금속 가공이 어려웠던 선사시대 때 만들어진 칼이나 청동 거울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후 농경 사회가 되자 왕이나 귀족에게 부가 집중되었고, 그들이 값비싼 제품을 수집하는 주체가 되었다. 17세기 후반이 되자 신흥 부호 계급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게 되었는데, 자신의 신분을 높아 보이게 하려고 물건들을 수집했다. 장사로 부자가 된 네덜란드 상인들은 화가를 고용해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이전에 자기 모습을 남기려면 초상화를 그리는 방법밖에 없었고 부자들만 가능한 일이었다. 초상화 그리기는 과거에는 왕만 가능했다면 근대에 들어서 부유한 평민도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나라는 1970년대 들어서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것이 부의 증거가 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우표 수집에 열을 올리기도 했는데 어느 정도 살게 되고 돈이 넘치면 무언가를 수집하는 행동이 나타나는 것 같다.

최근 들어 미술 시장이 뜨겁다. 더 잘살게 되자 우표에서 그림으로 바뀐 것이다. 경기 부양책으로 쏟아지는 돈이 갈 곳이 없어서 자산 시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과거에 부동산이 유일한 자산 투자처였다면 지금은 코인과 미술이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유명 화가의 작품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발 빠른 사람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여 NFT 아트를 만들었다. NFT란 디지털 아이템의 소유권을 기록하는 암호화 자산이다. 일반적으로 컴퓨터 파일로 전환이 가능한 디지털 정보는 특별한 비용 없이 무한대로 복제가 가능하다. 오리지널과 복제품이 차이가 없이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그런데 NFT 기술을 이용하면 누가 오리지널인지 보증이 가능해진다. 디지털 그림도 오리지널은 유일한 제품이 되다 보니 경제적 가치가 올라간다. 2021년 9월 아시아에서 열린 첫 NFT 아트 경매에서 약 146억원어치의 디지털 미술 작품이 팔렸다.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은 블록체인 회사 라바랩스가 제작한 ‘크립토펑크 9997′로 낙찰가는 약 51억이었다. 그런데 과연 NFT 아트는 투자 상품이 될 수 있을까?

가치라는 것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동의만 하면 만들어지는 것이다. NFT 아트를 옹호하는 사람은 전통적 그림처럼 오리지널이 확인된 NFT아트는 유한성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에 NFT 아트 시장도 전통적인 그림 시장처럼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한 가지 단서가 붙어야 한다고 본다. NFT가 기존 예술 작품처럼 돈이 되려면 되팔 수 있어야 한다. 가치는 내가 살 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되팔 때 증명된다. 김환기의 그림이 수십억원 가치로 인정받는 것은 수십억원에 다시 팔려고 할 때 사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황금이나 화폐가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다시 사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51억원에 산 NFT 아트를 다시 51억원이나 그 이상에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아직까지 NFT 아트가 두 번째 소유주에게 더 비싼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다.

유명 화가 그림이 투자 자산이 되는 것은 가격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갤러리 때문이다. 그리고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그림이 가격의 안정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미술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화가의 작품이 미술관 컬렉션에 들어갔느냐 아니냐가 그 화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미술관 컬렉션에 들어가는 게 중요한 이유는 되파는 시장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가 보장되는 것이다. 따라서 NFT 아트가 투자 자산이 되려면 현실 세계의 미술관 같은 ‘NFT 아트 미술관’이 필요하다. 그것도 여러 개가. 그 미술관은 NFT 아트를 비싼 돈을 주고 사주고, 그것을 되팔지 않고 보관하고 전시만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게 오프라인 공간이든 온라인 공간이든 상관없다. 과거에 프랑스 왕들이 루브르궁에 컬렉션을 쌓아두었던 것처럼 엄청난 자산가들이 NFT 아트에 대해서도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시장이 열리기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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