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엔 있는데, 한국 양돈업엔 4가지가 없네"

정혁훈 2021. 10. 2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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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四無'는 경영마인드·데이터·정보공유·소비자소통
양돈 마이스터들, 네덜란드서 농장운영 노하우 배워
교육과정 운영진 김창길 서울대 특임교수·서상원 수의사
"선진 양돈농장의 핵심 비결은 기업처럼 경영하는 것"

우리나라 농업 생산액 중 축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양돈이다. 단일 품목 생산액으로는 돼지고기가 쌀에 이어 두번째로 크다. 전체 농업에서 양돈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꼽을 때 상위권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돼지고기 삼겹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같은 돼지 사랑에 비해 양돈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축사의 열악한 환경이나 냄새, 자주 되풀이되는 전염병, 남용되는 항생제,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생산성 등이 늘 문제로 제기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국내 최고의 양돈 전문가들인 '양돈 마이스터'들이 지난 1년간 힘을 합쳤다. 양돈 마이스터는 15년 이상의 양돈 경력을 가진 사람들 중 1차 필기시험과 2차 역량평가, 3차 현장심사를 거쳐 선발되는 최고의 전문 양돈 경영인을 말한다.

대개 농가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외부에 노출하는 것을 꺼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 힘을 합친 7명의 양돈 마이스터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함은 물론 양돈 선진국인 네덜란드 전문가로부터 함께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 양돈업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이른바 '와게닝겐 선진농업 마스터클래스(WAAM, Wageningen Advanced Agriculture Masterclass)'가 그것이다.

네덜란드 쪽에서는 세계적인 농업대학인 와게닝겐대학에서 축산경제 분야를 맡고 있는 로버트 호스테 박사가 교장으로 참여했다. WAAM은 최근 제2기 과정을 시작했다.

이 과정의 한국 측 교장을 맡고 있는 김창길 서울대 특임교수(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는 "로버트 호스테 박사는 네덜란드 최고의 양돈 전문가로 2014년부터 이미 한국 양돈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기 때문에 양돈 마이스터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을 많이 했다"며 "새로 시작된 2기 과정에는 더 젊고 많은 양돈인들이 참여하게 돼 한국 양돈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WAAM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또 한사람이 있다. 바로 동물용 백신전문기업 히프라(HIPRA)에서 한국사업부문장을 맡고 있는 서상원 수의사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이 과정의 통역을 맡고 있다. 양돈 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수의사가 직접 통역을 맡다보니 교육 과정이 더욱 알차게 진행된다. 서 수의사는 "이번 교육과정을 통해 한국 양돈업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각 농가들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게 큰 소득인 것 같다"며 "WAAM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육 내용이 전체 양돈 농가로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교수와 서상원 수의사로부터 WAAM을 진행하면서 한국 양돈업에 대해 갖게 된 생각과 향후 발전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창길 서울대 특임교수(왼쪽)와 서상원 히프라 한국사업부문장(수의사)이 한국 양돈산업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정혁훈 기자>
-지난 1년간 이뤄진 교육이 어느 정도나 되나.

▶매월 1회씩 모여 하루 종일 교육을 했다. 네덜란드 현지 온라인 동영상 강좌 18차례를 포함해 총 40차례 강좌가 이뤄졌다. 또한 양돈마이스터들이 각자 농장에 대한 사례 발표를 7차례 했고, 3차례의 좌담회도 있었다. 과거 네덜란드 견학을 가서 짧은 시간 공부했던 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현지 전문가와의 소통이 이뤄진 셈이다.

-교육과정을 지켜보면서 확인한 네덜란드 양돈업의 생산성은 한국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가.

▶어미돼지 한 마리가 1년간 낳고 출하하는 새끼돼지가 몇 마리가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있다. MSY(모돈두당 연간 출하두수)라고 한다. 국내 전산기록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양돈농가의 평균 MSY는 18마리다. 어미돼지 한 마리가 연간 18마리 새끼돼지를 출하한다는 뜻이다. 반면 네덜란드 양돈농가 평균은 28.8마리다. 이걸 기준으로 하면 국내 양돈농가 생산성이 네덜란드 농가의 60%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이처럼 생산성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젖을 뗀 새끼돼지 폐사율이 18.2%로 네덜란드의 4.5%에 비해 4배 정도 높다는 점이다. 이는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를 잃을 정도로 질병과 사양 관리가 현장에서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양돈 현장에서 네덜란드와 차이가 나는 건 무엇 때문인가.

▶여러가지가 있지만 크게 '4무(無)'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경영 마인드의 부재, 둘째는 데이터 관리의 부재, 셋째는 정보공유의 부재, 넷째는 소비자와의 정보 교류 부재다.

-경영 마인드 부재는 무슨 뜻인가.

▶그동안 한국의 양돈산업은 양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양돈농가 가구당 사육두수가 1800두를 넘어섰다. 그런데 농장 운영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을 못벗어나고 있다. 예컨대 농장에서 연간 얼마나 돈을 버느냐고 물으면 정확히 답변하지 못한다. 축사 투자비에 대한 감가상각의 개념도 모르고, 가족들이 함께 일할 경우 인건비로 계상하는 것도 생각지 못한다. 양돈을 하다보면 사료와 돼지고기 가격의 변동성이 커 애를 많이 먹는다. 그럼에도 비용 관리 개념이 없다보니까 손해를 보면서도 본인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생산성 관리를 잘하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네덜란드 농가는 어떻게 다른가.

▶네덜란드 농가들은 마치 기업과 마찬가지로 직원들에게 명확한 목표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작년엔 MSY가 27마리였으니 올해는 30마리를 목표로 하자고 한다. 동시에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어떤 것을 실천해야 할 지를 제시한다. 그리고 연말에는 성과에 대해 평가하고 보상한다. 더불어 본인의 손익분기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농장의 추가적인 투자도 경제성을 비교하여 실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창길 서울대 특임교수가 말하고 있다.<사진=정혁훈기자>
-데이터 관리와 정보공유가 안된다는 건 무엇인가.

▶우리 농가들이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모돈에 대해서만 종이 현황판에 데이터를 기록할 뿐 새끼돼지가 태어나서부터 최종 출하될 때까지 전 과정을 전산으로 기록하는 농가는 많지 않다. 네덜란드에서는 전산 프로그램에 모든 돼지에 대한 현황을 기록하고,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데이터에 기반한다.

또한 네덜란드 양돈의 경쟁력 중 하나는 다양한 정보 공유 활동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농장에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도 즉각 정보를 공유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협조한다. 이에 비해 우리 양돈업계의 농가 모임은 정보 공유가 아닌 친목 활동에 치우치고 있는 데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능하면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작은 질병은 쉬쉬하는 문화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데이터 관리를 하면 실제 어떤 장점이 있나.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어떤 농장에서 갑자기 MSY가 나빠져 양돈 컨설팅 전문가를 불렀다고 치자. 그러면 컨설턴트는 해당 양돈 농가의 데이터와 전체 고객 농장 평균 데이터를 놓고 비교부터 한다. 해당 농장이 다른 농장에 비해 뒤떨어진 부분이 어디인지 곧바로 파악이 가능하다. 이후 매번 농장에서 리포트를 받으면서 다른 농장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지,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경고도 하고 알람도 준다. 농장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파악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데이터 관리다. 그리고 데이터 관리가 돼야지만 질병 관리도 정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생제 남용을 줄일 수 있고, 고급육 생산의 토대를 만들 수 있다

서상원 수의사가 말하고 있다.<사진=정혁훈기자>

-소비자와의 정보 교류 부재는 어떤 의미인가.

▶돼지고기의 최종 수요자는 소비자인데, 우리나라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양돈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양돈의 사육방식이나 분뇨처리 문제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인데, 사실 이들은 돼지고기 소비자들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에서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돼 동물복지, 무항생제 사육 등이 양돈에 반영된다. 양돈 농가들이 진짜 돼지고기 소비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네덜란드 양돈은 함께 성장하는 양돈인 반면 우리는 나 홀로 하는 양돈이다. 이번 교육과정을 지켜보면서 선진 양돈 국가가 되려면 함께 성장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양돈의 가장 큰 문제는 분뇨 처리인데, 네덜란드와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분뇨 처리를 개별 농가에 맡기는 시스템인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분뇨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한다. 양돈 농가가 많아 배출되는 분뇨가 많은 지역과 상대적으로 경작지가 더 많은 지역을 매칭해 분뇨의 퇴비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다. 또한 분뇨를 퇴비화하려면 항생제 투입이 적어야 하는 만큼 분뇨 처리를 위해 항생제 사용도 관리한다. 이른바 경축순환농업을 전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1년간의 과정이 끝난 뒤 양돈 마이스터들의 평가는 어땠나.

▶과정이 끝난 뒤 설문조사를 해보니 양돈 경영을 하는 데 있어서 합리적 판단 기준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또한 데이터 관리나 동물복지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보 교류의 중요성을 체감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무엇보다 양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주변과 함께 하는 농장을 만들어 가야 겠다거나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할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하는 등 양돈인들의 인식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양돈 농가들이 스스로 나서서 ESG(친환경·사회공헌·지배구조 투명성) 경영을 실천해야 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이번 교육과정의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정보공유를 실천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그동안 교육받은 내용을 요약집 형태로 발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국내 양돈농가 중 상위 1%안에 들어가는 양돈 마이스터들이 실제 교육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인 만큼 다른 농가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WAAM 2기생들이 첫 수업을 갖고 있다.<사진제공=WAAM>
-이제 2기 교육과정이 시작됐는데.

▶이번에 참여한 12개 양돈농가의 평균 나이는 34세다. 1기에 비해 무려 열 살 정도 낮아졌다. 후계농이 많이 포함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젊은 양돈인들은 아무래도 스마트 양돈에 더 관심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그런 쪽으로 교육이 이뤄지도록 더 노력할 생각이다. 또한 온라인 교육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네덜란드 현지 농가를 직접 방문해 현장을 온라인 연결하는 교육도 새로 추가할 계획이다. 현지 농가들과 실시간 온라인으로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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