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벗어나고자 또 다른 지옥으로, '오징어게임' [윤지혜의 슬로우톡]

윤지혜 칼럼 2021. 9. 2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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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456억, 6번의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 일인이 거머쥘 수 있는 금액이다. 대신 이 돈은 게임에 참여한 이들의 목숨값으로 만들어진다. 즉, 456명에서 최후에 남은 일인, 456억을 획득한 사람은 455명의 삶을 제거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되돌아온다. 각각의 그럴 만한, 납득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돈의 있고 없고가 계급이 되는 세상에서, 놀이에 참여한 이들로 하여금 오로지 개인의 운과 지략, 노력만 가지고 겨루게 한다. 이들이 걸 것은 자신의 목숨밖에 없다. 유년시절 놀이를 하며 탈락된 친구를 향해 숱하게 했던 말, ‘너 죽었다’가 있는 그대로 현실로 구현되는 것이니, 게임의 규칙이나 방법이 단순한 것에 비해 경쟁의 결과는 잔혹하기 그지 없다 하겠다.

참여한 자들에게 빠져나올 기회는 있었다. 첫 게임을 치르고 ’오징어 게임’의 충격적인 진면목을 제대로 맞닥뜨린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보인 반응은 그만두겠다는 거였으니까. 다행히 ‘오징어 게임’의 규칙 중에는 과반수 이상이 그만하길 원하면 놀이를 멈출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고, 사람들은 무사히 현실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문제는 이 현실이라는 게 ‘오징어 게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지옥이었다는 것. 이들 자체가 하나같이 갚을 수 없는 액수의 빚 때문에 벼랑 끝에 몰려 있었고 이러한 현실이 그사이 변해 있을 리는 없었다. 오히려 더 혹독해져, 그들의 삶은 물론이고 그나마 남아 있던 인간성마저 말살시킬 정도였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만이 지옥이 아니었다. 지옥은 현실에도 있었고, 아니, 현실은 더 지독한 지옥이었다.


게임은 뭔가 해볼 기회라도 있었지, 목숨을 걸으면 운 좋게 얻을 한 방이라도 있었지, 현실은 그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발이 썩어들어가는데 수술할 돈이 없고 북에서 엄마를 데려와달라 고용한 브로커는 돈만 받고 내 빼버렸고 그냥 밀린 월급을 받아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범죄자가 되어버릴 처지에 놓였다.

그들은 현실에서 이미 회생의 기회 따위 없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탈락자, 낙오자였고 이럴 바에야 차라리 목숨을 걸고 무언가 할 수라도 있는 세계가 한 치 정도 나았다 할까. 이를 가슴으로 동의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공포로 사지를 벌벌 떨면서도 핏빛이 낭자한 게임을 하러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완벽하게 납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잔인무도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에 끝까지 몰입해야 할 탄탄한 당위성이 발생하는데, 우리가 처한 현실도 등장인물들이 처한 것과 별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처참한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다만, 언젠가부터인가 돈에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래서 놀랍게도 우리 또한, ‘오징어 게임’ 속 인물들에게 동화되어 투명 돼지저금통에 쏟아지는 돈다발들에 현혹이 되어간다. 저만큼 있으면 누군가의 숨통을 끊을 만하다고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게 되는데, 이 때 우리는 꼭꼭 숨겨두었던 우리의 민낯을 마주하며, 개인의 욕망 앞에서 어떤 도덕성이나 이타심, 인간성이라는 게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날이 갈수록 거대해지는 자본의 힘 속에서 물질이 전부인양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오징어 게임’이 단순히 허구만은 아니며 머지 않은 이야기이고 어쩌면 감추어진 현실에 실재하는 상황일 수 있다면, 지금 눈살을 찌푸리며 보고 있는 나라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자문의 과정을 갖게 하는 것,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 ‘오징어 게임’의 의도이자 존재하는 목적이 아닐까. 좋은 작품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네이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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