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또..대학 단톡방 성희롱, 징계 어땠나

김미진 2021. 9. 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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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퇴교·무기정학 등 중징계도..개인 간 해결하거나 사과문 갈음도
법체계상 명확한 규범 형성 안돼, 처벌도 쉽지 않아

한국항공대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논란이 된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피해자들은 대학생 익명 사이트 에브리타임에 올린 글에서 가해자들의 공개 사과, 무기정학 이상의 처벌, 사건 처리 절차 및 징계 과정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요구했다. 항공대 측은 그러나 “징계 결과는 공지하겠지만 그 내용은 징계위에서 결정될 사항이라 확답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앞서 벌어졌던 다른 대학교 단톡방 성희롱 사례들이 처리된 경과를 봐도 피해자들의 요구 사항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가해 학생들에 대한 학교 측의 징계 수위는 근신 수준부터 퇴교, 무기정학 등까지 천차만별이었고, 학생 인권 등을 이유로 구체적 징계 경과를 밝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 측이 개별 고소 등을 진행해 형사 처벌까지 간 사례도 일부 있지만, 가해·피해 학생 간 합의로 마무리된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단톡방 성희롱’이 현행법 체계에선 성폭력으로 처벌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 같은 행위에 대한 사회적인 규범이 제대로 서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심각한 범죄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바로 서고, 그에 걸맞은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과문부터 퇴교까지…형사처벌은? 학교별 사례

①“여러분들 단톡방은 안녕하신가요?”…중징계 내렸다는 청주교대

2019년 11월 8일 청주교대 본관과 체육관에는 “여러분들의 단톡방은 안녕하신가요?”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 작성자는 “남자 단톡방에 있는 남학우 중 5명의 언행을 고발하고자 한다”며 단톡방에서 오갔던 대화를 발췌해 게시했다. 가해자들은 단톡방에서 동기 여학생의 사진을 올린 후 외모를 비하하거나 성적 대상화 하는 대화를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3만원을 걸고 여학생 외모 투표를 벌이기도 했다. 가해자들이 예비 초등 교사라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후 청주교대는 자체 진상 조사를 통해 가해자들을 중징계 처분했다고 밝혔다. 다만 2차 피해와 인권 문제를 이유로 징계 수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②가해자 사과문 받은 경희대 의대…징계 수위는 비공개

페이스북 캡처


경희대 의대도 학생 자치기구인 ‘인권침해사건대응위원회’에서 단톡방 성희롱 관련 사건보고서를 2019년 12월 발표했다. 남학생 단톡방에 가입된 남학생 중 3명이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내용이었다. 단톡방 속 이들은 여학생들에 대해 “빈약해서 내 취향이 아니다”, “핥고 싶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개인 SNS에 올라온 사진을 캡처해 이모티콘처럼 대화방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대응위 측은 가해 학생 3명에게 실명이 공개되지 않는 사과문 작성, 동아리 회원 자격정지, 학사운영위원회 및 교학간담회에 해당 안건 상정 등을 포함한 징계를 의결했다. 이후 학교 측에서도 성평등상담소와 상벌 위원회를 거쳐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다만 개인정보를 이유로 징계 수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③국군간호사관학교, 단톡방 11명 중 한 명만 퇴교·나머지 근신

군인권센터 제공


간호 장교를 육성하는 국군간호사관학교(국간사)에서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것도 2019년이다.

그해 10월 국간사 여생도들은 남생도들이 모인 단톡방 3곳에서 성희롱이 일어난 사실을 알아내 학내 자치위원회인 명예위원회에 신고했다. 가해자들은 동기나 선배 여생도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외모를 비하하거나 모욕했고 특히 상관인 훈육장교들에게도 수위 높은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그러나 학교 측은 가해자 11명 가운데 3학년 생도 1명만 퇴교 처분하고, 나머지 10명은 4~7주 근신 처분하는 데 그쳤다. 당시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갖고 “근신의 실질적 페널티는 한 주에 한 번 나가는 외박이 제한되는 것뿐이며 임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학교 측의 경징계를 규탄했다.

④‘n번방’ 따라한 ‘s번방’…부산 모 대학 “학생끼리 합의·소송전”

페이스북 캡처


지난해 6월엔 부산 모 대학에서 성희롱 단톡방 파문이 일었다. 7명의 남학생들이 n번방의 이름을 딴 단톡방을 만들어 여학생들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뒤 이를 주고받은 것이다. 단톡방에선 특정 학생의 실명이 포함된 음담패설이 오갔고 불법으로 촬영된 사진이 공유되기도 했다. 한 가해 학생은 “진짜 여기가 n번방이라서 유출되면 큰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톡방의 이름은 ‘S번방’이었다.

이들의 경우 학교 차원의 징계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 측은 “피해자들이 일부 가해자와는 합의하고 다른 가해자들과는 형사 소송으로 간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 학교 측에서는 따로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⑤전원 무기정학 처분 내린 충북대
충북대학교에서도 한 학과 단톡방에서 남학생들이 같은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화 하고 모욕한 것이 공론화됐었다. 피해자들이 공개한 단톡방 대화에서 가해자들은 여학생들을 지칭해 “퇴폐업소 에이스 같다”, “XX 받아먹고 싶다” 등의 성희롱을 일삼았다.

피해 학생들의 신고에 충북대는 양성평등상담소에서 진상조사를 마친 후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충북대학교 측은 가해 학생 전원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리며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단톡방 성희롱…뿌리 뽑기 위해선 처벌 강화뿐 아니라 인식 변화 필요

비슷한 형태로 벌어지는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이렇듯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단톡방 성희롱’이라는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조차 아직 성립되지 않은 현실을 한 원인으로 꼽는다. 그런 점에서 제대로 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위의 사건들을 형사처벌하려 해도,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형사법상 모욕죄나 사이버법상 명예훼손죄가 적용된다. 성폭력처벌법 제13조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따르면 상대방에게 성희롱 발언이 도달돼야 하는데, 피해자가 해당 단톡방에 속해 있지 않은 경우 ‘도달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의 김여진 팀장은 단톡방 성희롱 가해자에게 가벼운 징계가 내려지는 현실에 대해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 집단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며 “사건 처리가 귀찮고 번거롭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이버 공간의 성적 괴롭힘을 성폭력처벌법으로 포섭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유호정 활동가도 “처벌이 잘 이뤄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며 “단톡방 성희롱은 남학생들끼리 모여서 여학생을 성적으로 희롱하며 연대와 소속감을 다지는 장치로 이용된다. 이런 왜곡된 성 문화를 바꿔야 단톡방 성희롱 문제를 궁극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미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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