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대신 실력을 보라"..여자선수 '성차별'에 잇단 반기

박병수 2021. 8. 1. 14: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하의 너무 짧다고 지적받은 영국 육상 선수
"빨리 달릴 수 있도록 가볍게 입고 싶을 뿐"
'비키니 대신 바지' 노르웨이 비치핸드볼팀 벌금
"바지 입어도 경기력 같아..남자와 같은 대우를"
지난 25일 도쿄올림픽 예선에 출전한 독일 여자 체조 대표팀. 원피스 수영복 형태 레오타드 유니폼이 아닌 발목까지 하반신을 가리는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었다. 연합뉴스

여자 선수의 올림픽 출전이 허용된 지 120년이 지났지만, 스포츠계에선 여전히 여자 선수들이 성적 불쾌감이나 차별을 느낄 만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영국의 웨일스 출신의 장애인 육상선수 올리비아 브린은 이번 달 영국 선수권대회 관계자가 그의 선수복 하의를 가리키며 “너무 짧고 부적절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고 말했다고 <시엔엔>(CNN)이 3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브린은 시엔엔에 “이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지금 18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 살고 있다”며 “나는 가능한 한 멀리 뛰고 빨리 달릴 수 있도록 가볍게 입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브린은 트위터에도 언제 남자선수들이 비슷한 이유로 비난받은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그 여성 관계자의 말에 “정말 놀랐고, 화가 났다”고 적었다. 그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며 공식 문제제기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린의 사례는 여자 선수들에게 낯선 일만은 아니다. 여자 선수들은 종종 너무 노출했느니, 너무 가렸느니 하며 옷 때문에 입방아에 오르곤 한다.

노르웨이 여자 비치핸드볼팀은 이번 달 “부적절한 복장”을 이유로 벌금 1500유로(약 2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불가리아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대회에서 규정대로 비키니 하의를 입지 않고 일반 짧은 바지를 입었기 때문이다.

국제핸드볼연맹(IHF) 규정에 따르면, 여자선수는 너비 10㎝를 넘지 않는 비키니 하의, “몸에 꼭 끼고“ “다리 위쪽으로 각도가 나도록 잘린” 옷을 입어야 한다. 반면 남자선수에게는 “너무 헐렁하지 않은” 무릎 위 10㎝까지 내려오는 옷을 입도록 허용돼 있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팀의 율리 아스펠룬드 베르그는 “왜 그런 규정이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우리가 짧은 바지를 입는다고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입으면 안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비키니를 입으면 운동할 때 하의가 위로 말려 올라가서 늘 제자리에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며 “우리는 경기와 아무 관계 없는 일에 신경 써야 한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남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국의 유명가수 핑크가 나서, 노르웨이 대표팀의 벌금을 대신 내주겠다며 유럽핸드볼연맹이야말로 성차별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유럽핸드볼연맹과 국제핸드볼연맹은 여자선수의 복장에 대해 8월에 새로 선출되는 비치핸드볼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세인트 마리 대학의 마이클 홉슨은 “여자가 경기할 때 반복적으로 그들이 어떤 능력을 내보였는지에 못지않게 무엇을 입었는지를 놓고 화제가 되곤 한다”며 “이는 퇴행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 선수들이 각종 스포츠 대회에 출전해 오로지 성적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은 꽤 오랫동안 지속했다. 근대 올림픽이 1896년 첫 대회를 시작한 이래 여자선수는 1900년부터 출전했지만, 테니스, 요트, 크로켓, 승마, 골프 등 다섯 종목으로 제한됐다. 영국의 테니스 선수 샬롯 스테리는 첫 여자선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돼 있지만, 긴 치마의 정장 차림으로 경기를 해야 했다. 세인트 마리 대학의 미셸 플레먼스는 19세기 여자 테니스 경기에 대해 “코르셋과 긴 치마를 입었고 이런 차림은 당연히 좋은 경기력 발휘를 허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스포츠 분야에서 성차별과 대상화·상품화를 더는 허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방송 보도 지침에서 “불필요하게” 화장이나 머리, 손톱 모양, 복장 같은 “외모”나 “은밀한 신체부위”에 초점을 맞추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여자 체조팀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그동안 관례적으로 착용하던 비키니 모양의 레오타드 타이즈 대신 몸 전체를 가리는 옷차림을 하고 출전했다. 엘리자베트 자이츠 선수는 “어떤 옷이 편안한가의 문제”라며 “우리는 모든 여자, 모든 사람이 스스로 무엇을 입을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더 나은 복장 규정을 둘러싼 싸움은 단순히 성차별이나 성상품화를 거부하는 것만은 아니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팀 선수 베르그는 “기존 선수복 규정은 종교적인 이유로 그런 옷을 입을 수 없는 여자 선수들의 참여를 막을 수 있다”며 “우리는 모두 참여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림픽 무대에서 선수들의 행동이나 복장 하나하나가 젊은이들의 스포츠 참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스포츠와 사회, 사회적 변화에 관한 연구소’의 카터 프란시크는 “올림픽에서 우리 문화적 전통이나 우리 집안의 도덕적 규범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면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스포츠 참여와 권익을 지원하는 단체 ‘스포츠의 여성’의 스테파니 힐본은 “다양한 여성이 규정 제정과 디자인에 관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잘못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남자들이 모든 스포츠의 규정을 만들고 있는데, 여자들이 스포츠 분야 상위층의 핵심 부문에 참여해야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