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정책'선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최우성 2021. 7. 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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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최우성

경제산업부장

“자, 이런 상황에서는 머릿속에 딱 한가지만 그려야죠.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본인이 가장 자신있고 몸에 익숙한 것, 그거 하나만 믿어야 합니다.”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입담 좋은 해설자의 입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낯익은 레퍼토리다. 예컨대 승패를 좌우할 최대 고비에서 상대팀 강타자와 맞선 투수에게 해설자는 이런 유의 처방(?)을 내려주곤 한다. 때마침 도쿄올림픽 기간이다 보니, 팽팽하게 진행되는 여러 격투기 종목 경기 막판에도 얼추 비슷한 메시지의 이야기가 난무한다. ‘결정적 순간엔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것, 한가지만.’ 공식 아닌 공식이다.

대통령선거를 7개월여 앞둔 정치 무대에도 이런 공식의 쓰임새가 정말 많구나란 생각이 든다. 여야의 당 내외 예비주자들마다 선거캠프를 꾸리고 정책자문단의 몸집을 불리며 대표상품이라 할 만한 정책공약을 다듬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풍경만 놓고 본다면, 예상대로(!) 이번 선거 역시 ‘정책선거’라는 이름을 끌어다 대기엔 무리다 싶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를 찬양하는 입으로 봉건왕조 시대의 낡은 언어를 무시로 뱉어내는가 하면, 기후위기와 탈탄소를 외치며 인류 문명을 걱정하다가도, 돌아서선 한반도의 동쪽이니 서쪽이니 땅 타령에 한창이다. 얼마 전까지 현 정부의 고위 공직을 맡았던 몇몇 ‘야권’ 주자들은 정책의 차별화는 고사하더라도, 도무지 왜 선거에 뛰어들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하나를 설명하려 들면 두가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다.

비아냥대거나 정치혐오를 부추기려는 게 결코 아니다. 정책선거, 왜 우리는 그리도 힘들까, 그 비밀이 정말 궁금해서다. 대체로 대선주자들의 평균적인 정책 이해도가 높지 않은 편인데다, 메마른 정책의 언어가 욕망과 감정이 분출하는 선거판에서 가성비가 높지 않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일 게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게임(선거)에서 아이템(정책)을 바라보는 플레이어(대선주자)의 관점 자체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리 정치 풍토에서 대선에 뛰어든 주인공들은 으레 세 과시하듯 각 분야 인사들을 최대한 자기편 삼아 ‘좋은’ 아이디어를 끌어모으는 데 급급하다. 정책공약이 부피 큰 종합선물세트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이들에게 정책선거란 그저 최대한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아이디어 ‘더하기’일 뿐이다.

내부충돌, 자가당착, 자기부정…. 안타깝게도, 애써 만든 정책공약에 하자가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명 특정 주자가 쏟아내는 정책공약 시리즈인데, 거시경제 전망과 성장·분배 정책이 어긋나고, 기후에너지 해법과 산업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분명 안티테제인 정책1과 정책2가 태연하게 하나의 종합선물세트 안에 담길 때, 공약 단계에서 이미 정책의 자기분열은 일어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오래전부터 기본소득을 대표적 어젠다로 제시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사례는 징후적이라 할 만하다. 기본소득의 거시경제 효과를 의문시하는 비판엔 일정 기간 안에 소비하는 지역화폐라며 경기 진작 효과를 내세우더니, 국민 용돈이라는 비판엔 꼬박꼬박 모으면 자산 효과를 낸다고 반박한다. 양립 불가능한 이야기가 계속되다 보면 기본소득은 대표상품이 아니라 늪이자 덫으로 변할 공산이 크다.

2020년대를 넘어 2030년대 우리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선거임에도, 이번 대선에 나선 주자들에게서 정책은 역시나 덜 연마된 (투수의) 구종 같다. 얼핏 욕심은 있으나 그다지 연마하려는 강한 의지도 없는. 대선이라는 시장에 내다 팔 정책일수록 무작정 더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깎아내야 한다. 3차원(3D) 프린터의 등장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절삭형 모델에서 적층형 모델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정책만큼은 깎고 또 깎는 게 옳다. 그러지 않으면 제아무리 입으론 정책선거를 외친다 한들, 속된 말로 수시로 스텝이 꼬이기 십상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정책이 성능 좋은 무기는커녕 지지율을 갉아먹는 리스크로 전락하고 말 때, 결정적 순간에 기다리는 건 결국 ‘가장 자신있고 몸에 익숙한, 한가지’다. 그 한가지가 저열한 인신공격과 좌표 찍기, 혈통 타령 따위라면 누가 봐도 비극이고 촌극 아닌가. 정책선거의 시작은 더하기가 아니라 뺄셈이다.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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