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신청 반토막인데 '인정 소송'은 급증.. 법원 고심 깊어져

신지후 2021. 6. 2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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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난민신청 전년 대비 57% 줄었는데
'난민 불인정 취소해달라' 소송은 50% 급증
난민 인정 요건 엄격한 점 이유로 꼽히지만
법원선 "패소 확정에도 반복적 소 제기 늘어"
2018년 한 제주 난민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5년 1월 한국에 입국해 법무부에 난민 인정 신청을 한 A씨. 그는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할 사유로 "종교집단 지도자였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조직원들이 내게 지도자 역할을 승계 받도록 요구했는데, 이를 거부하자 살해 위협을 했다"는 점을 들었다. 정부는 그러나 이런 사연은 난민법 상 난민 인정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이의신청도 기각했다. A씨는 이후 2017년 법원에 정부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정부 결정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A씨는 패소가 확정된 직후인 2017년 10월 정부를 상대로 재차 난민 인정 신청을 냈다. 사유는 변하지 않았고 정부 역시 처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A씨는 그럼에도 난민으로 인정해달라며 다시 소송을 냈고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전 소송 경과 등을 고려할 때 이번 난민 신청은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난민으로 인정 받지 못한 입국자들이 정부의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이 지난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 인정 요건이 엄격한 탓에 불복 소송을 제기하는 인원이 늘어난 것이 주된 이유지만, 정부를 거쳐 사법부에서 패소가 확정된 뒤에도 반복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이들이 늘어난 영향도 크다.

23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난민 신청은 6,684건으로, 전년(1만5,451건) 대비 56.7% 급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편이 마련되지 않아 본국을 떠날 수 없게 된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난민 불인정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은 크게 늘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이하 난민 소송·1심 기준)'을 2,730건으로 집계했다. 전년(1,827건)과 비교해 50%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2017년 3,893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난민 인정 소송'이 지난해 다시 증가한 것이다.

난민신청 및 인정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법원 내부에선 반복적으로 법원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늘고 있는 점을 소송 급증 이유로 꼽고 있다. B씨도 2005년 정부에 첫 난민 신청을 시작으로 대법원에서 두 차례 패소 확정 판결을 받고도 3번째 난민 신청 및 소송을 진행했다. B씨의 경우처럼 '난민신청→불인정 판정→불인정 취소 청구 소송' 과정을 반복해 체류기간을 연장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법원 관계자는 "종종 소송 당사자가 재판에 참석하지 않아 사유를 직접 묻기가 어렵고, 제출된 증거만으론 정부와 다른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브로커를 통해 난민 사유를 허위로 만들어 소송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법원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의 난민 인정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불복 소송이 늘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난민을 대리해 다수의 소송을 맡아온 한 변호사는 "난민 심사를 받아 보면 신청자에게 불리한 자료만 판단의 주요 근거로 활용되고, 법원에서도 이런 자료에만 집중해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18년 이런 사정을 고려해 난민 심사와 법원 1심 단계를 통합하는 난민심판원 신설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현재는 논의가 멈춘 상태다. 지난해에는 중대한 사정 변경 없이는 난민 재신청을 제한하는 취지로 난민법을 개정했으나, 심사 및 소송 절차 자체를 내실화 하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억울한 난민 불인정 사례와 반복되는 소 제기를 줄이기 위해선, 뚜렷한 기준이 없고 일관성도 부족한 난민 심사·소송 체계를 세밀하게 고쳐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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