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곧 넣어줄게"..군대 가는 알바 임금 떼먹는 사장님들

천호성 2021. 6. 16. 21: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식당서 일하다 입대 때 급여 체불 사례 비일비재
소액체당금 청구시효 2년인 점 악용..복무 중 법정다툼 '산 넘어 산'
야간 아르바이트 중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육군 상병으로 복무 중인 21살 ㄱ씨는 입대 전 받지 못한 편의점 아르바이트비 때문에 요즘 잠이 오지 않는다. 그는 편의점주에게 임금과 주휴수당 등 약 40만원을 받지 못하고 2019년 12월 편의점을 그만뒀다. 편의점주는 차일피일 지급을 미뤘고, ㄱ씨는 밀린 임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지난해 7월 군에 입대했다. 그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소송구조를 신청해서라도 떼인 돈을 받아낼 생각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초 정기휴가가 취소돼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올해 12월까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일을 그만둔 지 2년이 지나 소액체당금(노동자가 임금을 못 받은 경우 정부가 일정 범위 내에서 임금을 지급하고 이후 사업주로부터 해당 금액을 회수하는 제도)도 받지 못한다.

ㄱ씨처럼 입대를 앞둔 청년들이 ‘알바 사장님’에게 돈을 떼이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일부 고용주들이 군대를 다녀오면 임금 체불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시한이 지난다는 점을 악용해 밀린 월급을 주지 않는 것이다.

16일 체불 피해자에게 변호사 등을 연결해주는 앱인 ‘돈내나’의 사건 후기 게시판을 보면, 입대 전 못 받은 임금을 받아낸 현역 장병들과 예비역들의 ‘분투기’가 줄을 잇는다. 20대 초반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자주 하는 편의점·음식점에서 임금을 떼인 경험들이 대부분이다. 22살 ㄴ씨는 입대 직전 편의점 점주로부터 ‘퇴직금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점주는 ‘입대 격려금’이라며 쥐여준 50만 원이 퇴직금 명목이라고 했다. ㄴ씨는 입대 일주일 전에 변호사를 선임해 체불된 돈 600만 원을 나중에 돌려받았다. ‘돈내나’에는 지금까지 ㄴ씨와 사정이 비슷한 20여건의 군 장병 상담 신청이 들어왔다.

임금 체불이 발생하면 노동자는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는다. 체불 액수 등에 대한 고용부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사업주가 체불액을 주겠다고 합의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는 고용부가 발급한 ‘체불금품 확인원’ 등을 근거로 민사 소송에 나선다. 노동자가 승소하면 근로복지공단에 소액체당금을 청구해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임금체불 사건 전문 변호사·노무사들은 현행법상 ‘퇴직 다음날부터 2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만 소액체당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부 고용주들이 악용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육군 현역병의 복무기간이 18개월, 공군 21개월(올해 12월 이후 전역 예정자 기준) 등인 점을 고려하면, 입대 전 떼인 임금에 대해 전역 뒤 법적 다툼에 나서더라도 시간이 빠듯하다. 소송을 위해 체불금품 확인원을 발급받는 것부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부천시 비정규직근로자 지원센터의 강선묵 노무사는 “고용노동부에 진정해 임금 체불을 확인하는데도 보통 2~3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군 복무 도중 소송에 나서기는 더욱 어렵다. 근무시간과 체불액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근로계약서, 출퇴근 기록, 급여명세서 등의 증거자료를 모아야 한다. 외출과 외부 연락이 자유롭지 않은 현역 장병들에게는 만만찮은 일이다. 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를 신청해 소송을 대리하게 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역시 본인이 직접 공단 지부·지소에 방문하거나 노무사 등에게 인감증명서 등을 보내 대리 신청을 해야 한다.

소액체불 사건을 많이 맡은 한 변호사는 “한국 알바 시장에서 ‘영장 나왔다’는 말은 업주에게 지갑을 내어주는 꼴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예비 장병들에 대한 임금체불은 흔한 사건이 됐다”고 꼬집었다. 돈내나 개발사의 박기범 대표도 “‘군대 가면 대응 못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입대 예정 노동자들을 만만하게 보는 업주들이 있다”며 “인생 첫 일자리에서부터 임금이 체불된 경험이 큰 상처로 남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전했다.

군 장병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소송 없이 정부가 체당금을 보장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장은 “알바 노동자의 경우 고용노동부 등의 조사로 체불 사실이 인정되기만 하면, 노동자의 소송 없이도 국가가 먼저 임금을 지급하고 나중에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정치권에서 검토된 적이 있다.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직접 돈을 받아내는 데 많은 노력이 소요되는 만큼 이런 방식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앞서  국회에서 알바 노동자들에게 소송 없이 체당금을 보장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이 몇차례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다만 지난 4월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오는 10월부터는 임금 체불 노동자가 소송 없이도 체당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고용부의 조사로 체불 사실이 인정되기만 하면, 노동자의 소송 없이도 국가가 임금을 지급하고 나중에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가 소송전을 통해 사업주에게 직접 돈을 받아내는 노력을 덜어 현역 군인 등이 체불금 회수에 나서기도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