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5년 뒤 완공된다"..가우디 150년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송경은 2021. 5. 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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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전경. 오른쪽 정면으로 보이는 외벽은 가우디가 직접 완성한 성당 동쪽의 `탄생의 파사드`다. /사진 제공=사그라다 파밀리아
[랜선 사진기행-46] 1926년 6월 10일 저녁 5시 30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코르테스 거리에서 남루한 차림의 한 70대 남성이 길을 건너다 전차에 치였다. 이 노인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위중한 상태로 사흘 만에 결국 사망했다. 그의 행색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도 사람들은 그가 카탈루냐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 가우디는 그의 인생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현장에만 12년째 머물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저녁 기도를 하러 가던 길에 변을 당한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40여 년에 걸쳐 그가 모든 열정을 쏟았던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현재도 건설 중인 로마 가톨릭 성당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스페인어로 '신성한(성스러운) 가족'이란 뜻이다. 프로젝트는 1882년 바르셀로나교구의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라의 설계로 시작됐는데 1년 만에 수석 건축가가 가우디로 교체되면서 전통적인 고딕 양식에서 고딕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을 결합한 특유의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변모했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 현대 건축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가우디가 사망했을 당시에는 동쪽 파사드(Facade·건물의 전면) 등 전체 계획의 4분의 1 정도만 완성된 상태였다. 나머지 부분은 가우디의 제자 도메넥 수그라네스 등이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진행 중이었는데 그마저도 1936년 스페인 내전 중 일부가 파괴됐고 이때 현장에 있던 설계안과 사진, 석고 모형도 함께 불타버렸다. 이 때문에 가우디가 직접 완성한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cade)'를 제외한 나머지 외관은 후대 건축가들이 가우디가 남긴 자료를 복원·재해석해 현대적으로 설계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 자연의 형태를 모방한 유기적인 구조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띈다. /사진=송경은 기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탄생의 파사드 앞. 반듯반듯한 바르셀로나 거리들이 만나는 길 끝에 마치 땅밑에서 하늘을 향해 치솟은 것 같은 형상의 거대한 성당이 홀로 우뚝 서 있었다. 곡선이 어우러진 4개의 첨탑은 신을 위해 밝힌 거대한 촛불처럼 보였다. 예배당 안쪽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나무들이 우거진 숲속 비밀의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식물의 줄기나 동물의 근육 같은 유기적인 형태의 기둥 사이를 메운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햇빛이 쏟아졌다. 그 은은한 빛은 내부 조명과 함께 시시각각 아른아른했다.

가우디는 자연의 구조와 형태를 모방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하면서 비정형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균형 잡힌 구조, 내부와 외부의 완벽한 조화, 기능적 건축 요소와 장식이 어우러진 조형미를 추구했다. 건축가들은 이런 가우디의 건축 철학을 살려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성당 건설이 유독 더뎠던 것은 시공 난도가 높은 가우디의 비정형적인 구조와 성도들의 기부금에 의존해야 했던 자금 조달 문제 때문이었다. 생전에 가우디는 이런 상황에 답답함을 표출하기도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총 세 개의 파사드가 있는데 이 중 유일하게 가우디가 직접 완성한 동쪽 탄생의 파사드는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를 묘사한 조각상들로 꾸며져 있다. 탄생의 파사드에서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세 개의 청동문은 왼쪽부터 '희망의 문' '자비의 문' '믿음의 문'으로 불린다. 중앙의 자비의 문 위에는 말 구유에서 성모 마리아의 손에 일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아기 예수와 그 둘을 감싸고 있는 성 요셉을 나타낸 조각상이 자리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가우디가 직접 조각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수난의 파사드`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에 이른 마지막 이틀의 수난기가 조각상으로 담겨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반대편인 서쪽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cade)'는 십자가를 진 예수 조각상 등 예수의 수난기를 묘사한 것으로 1954년 착공해 1976년 완성됐다. 가우디는 수난의 파사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최후의 만찬과 제자들의 배신, 십자가 죽음, 부활 사이의 시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곳곳엔 성서의 장면과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수난의 파사드 중앙의 '수난의 문'은 스페인의 세계적인 현대조각가였던 주제프 마리아 수비라치가 음각으로 조각한 예수상으로도 유명하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부활을 표현한 남쪽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는 2002년 착공해 현재도 공사 중이다.

현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약 80% 완성된 상태로 목표 완공 시점은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이다. 완공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첨탑은 총 18개가 된다. 2015년 성당의 12개 첨탑 가운데 가장 높은 '예수 그리스도의 탑'(높이 172.5m)이 완공됐고 올해 12월에는 두 번째로 높은 성모 마리아 탑(높이 140m)이 완성될 예정이다. 나머지 각 파사드에 4개씩 있는 총 12개의 첨탑은 12명의 사도(제자)들을 상징하고, 다른 4개의 첨탑은 전도자들을 상징한다.

한평생 기인처럼 살다 간 가우디는 그가 마지막까지 모든 정열을 불태웠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에 묻혔다. 2005년에는 유일하게 가우디가 직접 설계부터 건축까지 책임졌던 탄생의 파사드와 가우디가 잠든 성당 지하 공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한편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남긴 대표작에는 구엘공원과 까사 밀라, 까사 바트요, 까사 비센스, 구엘 저택, 콜로니아 구엘 교회 등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수난의 파사드 전경(왼쪽). 오른쪽은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모습이다. /사진=송경은 기자·사그라다 파밀리아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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