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러 대 쓰면 '거북 충전'인데..'초급속'이라 우기는 국토부

이재연 입력 2021. 4. 27. 14:46 수정 2021. 4. 2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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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에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가 충전하는 모습. 현대차 제공

“급속 충전기라고 하는 게 맞죠. 그런데 각각 순간적으로는 초급속이 되지 않습니까. (보도자료에) 차량 여러 대가 동시에 (350kW 충전이) 된다고는 안했잖아요.”(이상헌 국토교통부 도로정책과장)

전기차 초급속 충전소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또다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350kW급 충전기 규모를 한 차례 바로잡았으나, 정정한 숫자마저도 사실과 달랐다. 정책 홍보에 급급해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겨레> 취재 결과, 현대차그룹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한 350kW급 충전기의 출력은 2기당 총 400kW로 제한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국토부는 현대차그룹이 350kW급 충전기 72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가 <한겨레> 보도 이후 48기라고 정정했는데, 이 또한 사실과 거리가 있는 셈이다. 1기당 출력은 350kW가 아닌 각각 260kW과 140kW로 제한된다. 이는 아이오닉5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 출력인 240kW에 한참 못 미친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충전소의 총 용량을 1000kW로 제한하면서 나타난 문제다. 충전소에는 충전기 6기가 있으며, 충전기 2기씩 하나의 파워뱅크에 연결돼 있다. 파워뱅크 용량은 각각 400kW, 400kW, 200kW다. 각 충전기가 350kW의 출력을 내려면 파워뱅크 용량은 그 두 배인 700kW여야 하는데 이보다 훨씬 적은 것이다. 때문에 충전기 6기를 동시에 쓸 경우 차량 2대는 260kW, 2대는 140kW, 2대는 100kW로 충전하게 된다.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에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가 충전하는 모습. 현대차 제공

그럼에도 국토부는 초급속 충전기 숫자를 거듭 부풀려왔다. 지난 14일 낸 보도자료에서는 “전기차 초급속 충전기 72기 설치를 완료했다. E-GMP 기반의 차종은 18분 내에 80% 충전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이 중 24기의 출력이 100kW로 제한된 점이 드러난 26일에는 “현재 48기만 350kW급으로 운영 중”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마저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이상헌 국토부 도로정책과장은 “충전소에 가면 다 (정확히) 써져 있다”고 해명했다.

현대차그룹도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최근까지도 초고속 충전기를 고속도로에 72기 설치했다고 밝혀왔다. 현대차그룹 보도자료에 ‘초고속 충전’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9년으로, 당시에는 350kW급 충전을 가리켰다. 이후 출력이 크게 줄었는데도 별다른 설명 없이 같은 용어를 써온 것이다.

심지어 일부 자료에서는 350kW급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지난 14일 낸 보도자료에서도 “(이번에 개소한 충전소는) 전기차 초고속 충전소로, 출력량 기준 국내 최고 수준인 350kW급 초고속 충전설비를 갖춘 것이 특징” “충전 시연에서 아이오닉5와 EV6는 18분 이내에 배터리 용량 10%에서 최대 80%까지 빠른 속도로 충전되며 초고속 충전 대중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등의 표현을 썼다.

아이오닉5 출시 전후로 현대차는 ‘초고속 충전’ 홍보에 열을 올려왔다. 불편하고 느린 충전이 전기차 구매의 가장 큰 진입장벽 중 하나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밝힌 아이오닉5의 350kW 충전 속도는 시중에 출시된 모든 전기차 중 가장 빠른 수준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거짓·과장 광고가 소비자의 구매 선택에 영향을 줬을 경우 표시광고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법 위반 여지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향후 현대차그룹이 출력 제한을 풀어줄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고용 문제로 인해 각 충전소의 출력을 1000kW로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용량이 1000kW 이상인 전기수용설비의 안전은 설비를 소유·점유한 업체에 소속된 직원이 상주하며 관리해야 한다. 1000kW 미만인 경우에만 대행사업자가 관리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충전소는 대부분 전기차 충전 전문 업체인 대영채비가 관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인건비 등을 줄이려 출력을 제한해 전기차 이용자에게 충전 부담을 키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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