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회 이상 환자들 찾은 '강원도 왕진의사'.."왕진 업무, 공공의료 서비스로 안착시켜야"

문주영 기자 2021. 4. 2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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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장

[경향신문]

호호방문진료센터의 양창모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최희선 간호사, 마을활동가인 정윤후 케어메니저(왼쪽부터)와 한 팀을 이뤄 매주 3일씩 강원도 농촌 마을로 왕진을 다니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거동 불편한 고령층 환자 위해
한 달마다 방문 마을진료소 절실
지역의사제, 공공의사제로 명명
공무원처럼 정년 보장해줬으면

강원도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차로 꼬박 1시간 달려 환자를 찾아간다. 때론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어렵사리 찾아간 환자다보니 진료시간은 짧으면 30분, 길게는 1시간까지 걸린다. 지난 20년간 왕진만 600회 이상 다닌 ‘강원도 왕진의사’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장(51)의 요즘 일상이다. 지난 18일 인터뷰에서 그는 “왕진은 진료실이 아닌 곳에서 환자의 의료적 경험을 의사도 같이 겪어보는 과정”이라며 “왕진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 진료실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절대 같은 의사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양 센터장은 자신의 왕진 경험과 소회를 담은 에세이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한겨레출판)를 최근 출간했다. 그가 일하는 센터는 원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 소속이다. 작년 4월 센터장으로 부임했으며 한국수자원공사 지원을 받아 수몰된 농촌 지역에 왕진 가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마을활동가·간호사와 한 팀이 돼 일주일에 3일, 하루 평균 4가구에 왕진을 다닌다”고 전했다.

사실 그에게 왕진은 낯설지 않다. 경희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20여년 전 전공의 시절 지인 부탁을 받고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집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의료봉사차 왕진을 다녔다. 이후 첫 직장으로 들어간 곳이 바로 원주 의료사협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3년 넘게 근무하며 일주일에 한두 차례 시골 어르신들을 위해 왕진을 다녔다고 한다.

“지난 10년간은 일반 병원에서 봉직의로 일했습니다. 환자 1명당 진료를 보는 시간을 재봤더니 평균 6분이었어요. 그런데도 병원 행정처로부터 진료를 더 빨리 봐달라는 압박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던 차에 원주 의료사협에서 왕진 업무를 제안받고 과거 추억이 떠올라 다시 시작하게 됐죠.”

그는 책에서 왕진 다니면서 만난 환자들의 사연을 중심으로 공공의료 확충, 의사파업 등 의료계를 둘러싼 이슈에 대해서도 무겁지 않게 이야기한다. 또 글 사이사이 일반 의사들과는 사뭇 다른 활동들도 엿보인다.

춘천의 생활방사능 문제 개선을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골프장 건설을 막기 위해 밤새 천막을 지키는 것 등이다. 양 센터장은 “국가보다 한 이웃의 도움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 오랫동안 시민사회나 협동조합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그는 “책 100권을 내려면 30년산 나무 한 그루가 없어진다는데 과연 내 책이 나무 한 그루보다 가치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무 한 그루를 없애면서까지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왕진 업무를 공공의료 영역에서 안착시킬 것을 주문했다. 왕진은 2019년 말 국가 시범사업으로 지정된 후 동네 민간병원을 대상으로 신청받아 진행되고 있지만 낮은 수가 등을 이유로 참여가 저조하다.

“농어촌을 다니다보면 거동이 불편해 왕진이 필요한 분들이 있어요. 왕진을 활성화시키려면 수가 조정도 필요하지만 이를 공공의료화해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당뇨·고협압 등의 약 처방만을 위해 시내 병원을 찾기가 어려운 시골 어르신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의료진이 찾아가는 ‘마을진료소’ 운영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작년 의사파업의 원인이 된 지역의사제에 대해 그는 “명칭부터 ‘공공의사제’로 바꿔야 한다”며 “정부 방안에 따르면 국가 지원을 받는 의사가 몇년만 지역에서 일한 후 민간으로 돌아가 기존 의사들과 경쟁하게 되니 반발이 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공의대 졸업생들을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처럼 육성해 공공의사로서 활동하게 하면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좋은 의사가 되려면 환자의 의자에 앉아보라”고 조언했다. “저 역시 환자 보호자로서 병원을 갈 때면 당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자신이 환자에게 처방한 약을 직접 먹어보거나, 기회가 되면 병원에 입원해보는 등 환자 입장이 돼 보는 것이 필요해요. 쓸데없는 일 같아도 환자들의 삶에 밀착해 있는 의사가 결국 좋은 의사거든요.”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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