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엄근진' 증권사가 달라졌다.."동학개미를 웃겨라"

지영의 2021. 3. 1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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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지영의 기자 = 금융시장에서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미지의 대표주자였던 증권사들이 유쾌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과거 증권사 광고 마케팅은 고액자산가, 소위 ‘큰손’ 고객 유치를 위해 무게감 있는 이미지에 방점을 뒀다. 최근에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대중적이고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천만 영화를 패러디해 유쾌한 광고를 내고, 증권사 사장이 바리스타로 변신해 투자자를 직접 만나기도 한다.


엄숙·근엄·진지…성공한 남성이 주류였던 과거의 딱딱한 증권사 광고


사진 자료= 왼쪽부터 메리츠증권, NH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하나대투), KB증권 / 출처= 유튜브 옛날 TV, 각사 유튜브 채널 캡쳐

 증권사의 옛날 광고들을 관통하는 코드는 ‘엄근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증권사의 상징과도 같은 ‘검은색 칼정장’을 입은 남성 인물이 등장해 “믿고 투자할 곳은 바로 우리 회사”라고 선언한다. 투자철학이나 신뢰를 강조하는 내용의 광고가 흔했다. 대체로 무거운 분위기다. 늘 정장 차림과 품위를 고수하는 증권가의 이미지와도 겹친다. 우리 회사가 성공한 남성의 자산관리를 맡는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함도 있었다.


광고 영상을 보면 고급스러운 상류층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남성이 다른 테이블에서 “메리츠증권은 다르다”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해당 증권사에 관심을 갖는다. NH투자증권 광고에서도 엄숙하게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먼 곳을 응시한다. 잘 차려입은 수트 소매를 가다듬는 화면이 스쳐 가는 가운데 광고 메시지가 전개된다. KB증권과 하나금융투자(하나대투 시절), 대신증권 등의 과거 광고도 유사하다. 지난 2015년도 이전까지의 증권사 광고에서 흔히 보인 경향이다. 등장하는 인물과 분위기만 보면, 금융투자는 일견 부유하고 성공한 40~50대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춤추는 증권맨, 동학개미를 웃겨라”…엄근진 내려놓고 ‘트렌디·재미’ 추구


딱딱했던 증권사 광고가 달라졌다. 유쾌하고, 흥이 넘치게 변했다. 유쾌한 이미지 변신은 최근 5년간 광고에서 잘 드러난다. 대중의 취향에 맞게 영화와 인터넷 유행어를 패러디한 광고가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볍고 유쾌한 광고 내용에 웃으면서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투자상품을 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진 자료= 한국투자증권 유튜브 채널 캡쳐

지난 2016년 한국투자증권은 영화 <신세계>와 <타짜> 등을 패러디한 광고를 내놨다. 한국투자증권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홍보하는 광고다. 광고 속에서 신세계의 정청(배우 황정민 역할) 이미지로 꾸민 배우가 “브라더, 한투 ISA가 최선이여? 재태크 확실하냐”고 묻는다. 여기에 영화 타짜 속 아귀(김윤석)의 대사를 활용 “한국투자증권이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며 “ISA가 최선이다에 내 통장 전부를 건다”고 받아친다. 점잖고 품위 있는 과거의 증권사 광고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인 대사다.
사진= 이베스트투자증권 유튜브 캡쳐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검은 정장도 집어 던졌다. 지난 2018년 초 이베스트투자증권 광고에서 증권사 직원 역할을 맡은 출연자들은 검은 정장 대신 화려한 옷을 입고 흥겨운 트로트에 맞춰 춤을 춘다. 과거 광고들과는 영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광고에는 코미디언 추대엽의 ‘부캐(부 캐릭터)’ 카피추가 등장해 “초보도, 고인물도 이베스트로 오라”고 외치며 주식투자 애플리케이션(앱)을 홍보한다.

증시에 투자자가 대거 유입됐던 지난해 ‘동학개미 운동’ 이후에 등장한 광고들은 더욱 흥이 올랐다. 일명 ‘동학개미’로 명명된 신규 투자자들 덕에 증권사들이 리테일 수익 효과를 톡톡히 보는 상황. 본격적으로 동학개미를 잡기 위한 광고 마케팅에 열을 올릴 이유가 생겼음이다.

사진 자료= 유안타증권 유튜브 캡쳐

유안타증권은 주식 앱 ‘티레이더’의 홍보를 위해 지난해 내놓은 광고 ‘개미열차’에서 영화 <설국열차> 분위기를 유쾌하게 패러디했다. 달리는 지하철 속에서 주식시장이 열리고, 온통 주식 매수에 나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 이때 그를 잡아당긴 한 노인이 사뭇 진지하게 속삭인다. “주식은 한 가지만 기억하면 돼.....  햇빛에 사서, 안개에 팔라고.....”

다른 광고에서는 고점에 물려 구조대를 기다리는 투자자를 ‘고층 아파트 주민’, ‘물타는 서퍼’ 등으로 빗대며 공감과 재미를 노렸다. 유안타증권에서 제공하는 주식 앱의 특징을 유쾌하게 담아낸 광고 시리즈는 네티즌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SNS상에서 크게 흥했다. 매 광고마다 조회수가 수백만이 넘는다. 댓글에서는 재미있고, 새롭다는 호평 일색이다.

유안타증권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맞는 영상미와 이슈메이킹을 통해 활발한 SNS 확산을 기대하는 부분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 메시지가 임팩트 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미래에셋대우 유튜브

유명인의 유행어를 끌어와 젊은 투자자들에게 기업 이미지를 어필하려는 노력도 흔히 엿보인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달 제작한 광고에 슈퍼주니어의 멤버 려욱을 섭외했다. 2030 세대 사이에서 통하는 려욱의 유행어 “어! 어! 자신 있어!”를 광고에서 변주했다. 면접을 보는 취업준비생 려욱이 면접관 앞에서 “미래에셋대우와 함께라면 (투자가) 자신 있어!”라고 외친다.
사진 자료= 삼성증권 유튜브

중장년 남성 위주였던 과거와 달리, 광고 속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인공의 성별과 나이대도 확연히 다양해졌다. 지난해부터 다시 리테일 비즈니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삼성증권이 제작한 광고에서 잘 드러난다. 월급 이외의 수익을 내고 싶은 직장인부터 연금을 고민하는 부부까지 다양한 대상이 등장해 투자를 시작해야 하는 필요성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고객 타켓층이 다양해진 경향을 잘 보여준다.
사진 자료=  NH투자증권 제공

또 과거에는 증권사 사장이 CF에 엄숙하게 등장하기만 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투자자를 만나 현장 마케팅에 나서기도 한다. 앞치마를 입고 바리스타가 돼 커피도 따라준다. NH투자증권 정영채 사장 이야기다. NH투자증권은 지난 2019년부터 이색 광고전에 나섰다. 회사 브랜드 슬로건을 ‘투자, 문화가 되다’로 정하고 체험형 마케팅을 3년째 진행해오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제철식당, 지난해에는 문화다방을 열었다. 식당, 카페 테마를 통해 투자자들의 일상으로 스며드는 광고인 셈이다. 투자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친숙하면서도 접근하기 쉬운 문화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전하기 위한 마케팅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하루하루 수익률에 일희일비하는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에 있어 하나의 문화가 되는 투자를 하자는 취지”라며 “동학개미운동이 벌어지면서 (투자 시장의 방향성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딱 맞아떨어졌다. 대중매체 광고보다 효율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올해에도 색다른 체험 공간을 마련해 이달 말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국내증시 환경이 광고에 반영… 투자자 영향력 높아졌다

그래픽= 윤기만 에디터

개인 투자자의 변화가 증권사 광고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방향성을 바꾸고 있다. 개인 투자자의 성별·연령 변화, 영향력 증가에 증권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광고 마케팅에서 드러나는 셈이다. 특히 지난해 개인 투자자들은 급락했던 지수를 끌어올리고, 증시를 방어하는 수준의 유동성 동원 능력도 보여줬다. 정부의 증시 정책까지 뒤흔드는 힘센 개미로 탈바꿈하고 있다.

증시에 유입되는 개인 투자자 수가 크게 늘고,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지난 1월 한국 갤럽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3명은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증시에서 자산 증식 기회를 찾으려는 2030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 합성어) 투자자의 참여 열기도 뜨거워졌다. MZ세대는 곧 자금력이 있는 4050이 될 것이다. 이들을 미리 잡기 위해서는 증권사의 전략도 자연스레 감각있고, 젊어져야 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기업 이미지와 투자시스템, 자산관리에 대한 비교적 단순한 광고가 주를 이뤘다. 지난 2010년 이후부터는 주로 저렴한 거래 수수료와 맞춤형 자산관리, 제공 상품과 다양한 서비스를 다루는 광고가 늘기 시작했다. 광고 채널도 다변화됐다. 과거에는 주로 신문·TV 광고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온라인상의 각종 SNS가 주요 채널이 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소액투자를 하는 개미보다 주로 고액자산가, 큰손 모으기가 중요했다. 신뢰감 있는 회사 이미지, 무게감 있는 연출이 중요했던 이유”라며 “이런 경향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증권사가 제공하는 투자상품도 다양해지고, 고객층이 넓어졌다. 젊은 투자자도 대거 늘어난 상황이다. 젊은 투자자들의 감성에는 보다 유쾌한 전략이 유효하다고 판단해 흥미를 끌고, 재미있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개인 투자자 영향력이 높아진 부분도 광고 추세에 반영되고 있다. 특히 지금 시장에 들어오는 밀레니얼 세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광고의 감수성과 유머 코드가 거기 맞춰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ysyu101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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