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위한 돈 뿌리기, 국가 미래에 최악의 행동"..정진욱 신임 경제학회장

세종=최효정 기자 2021. 3. 1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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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장에게 듣다] ⑤
표 위한 돈뿌리기는 ‘백해무익’…정치인들 반성해야
한국 경제 선방했지만 재정 일자리 기여도 너무 높아
부동산 정책 실패가 가계부채 폭증 원인
정부 주도 공급 정책은 ‘하책(下策)’…양도세 일시 완화해야

"보편지원이 사회후생의 증대를 위한 것인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인가. 시장 실패는 정부가 교정할 수 있지만 정치가들이 이기적인 행태로 자기 표만 생각하면 고칠 방법이 없다"

정진욱(61)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은 지난달 19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경기도 재난지원금 지급 등 정치권을 필두로 제기되는 ‘기본소득론’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한국경제학회는 국내 최대의 경제학회다. 정 교수는 지난달부터 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정진욱 신임 경제학회장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연세대 대우관에서 인터뷰를 갖고 “표를 위한 돈 뿌리기는 국가 미래를 위한 최악의 정책”이라면서 “정치인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상훈 기자

그는 경제에 통계학을 접목한 계량경제학의 전문가로,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선거철이 개시되는 올해 한국의 최대 규모 경제학자 모임을 책임지는 수장의 최고 덕목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다.

작년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이후로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본소득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최근 도민을 대상으로 경기도 재난지원금을 보편 지급하기도 했다. 기본소득론자들은 한국의 재정수지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아 지출 여력이 있고, 토지 등 ‘공유부’에 대한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자는 입장이다.

◇돈 뿌리기 포퓰리즘 ‘백해무익’…금융지원으로 회수해야

정 교수는 ‘정치적 중립성’을 최고 덕목으로 지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보편지원론’을 두고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이 선진국 처럼 무작정 돈을 찍어내는 것은 결국 미래 세대에 고스란히 짐이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표를 위해 돈을 뿌리는 것은 나라에 대한 최악의 행동이고 백해무익한 정책"이라면서 "정치가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경고하고 싶다"며 경종을 울렸다.

그러면서 "나랏빚의 규모뿐 아니라 성격이 중요한데, 생산성을 위해 빚을 져 투자한다면 5년후 10년 후에 경제가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갚을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이 일회성 지원을 위해 빚을 늘린다면 미래 세대에 갚기 어려운 짐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소상공인 등에 선별 지원된 지난 ‘4차 재난지원금’에도 회의감을 표했다. 피해 지원은 불가피하나 실직자 등 다른 피해계층에 비해 정치적으로 과잉대표되는 곳에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국회 통과를 앞둔 소상공인 손실보상제 역시 실질적 손실 측정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는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하려면 차라리 지원제도를 이원화해 실직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생계급여를 지원하고,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겐 무작정 돈을 줄 것이 아니라 싼 이자로 대출을 지원해 회수할 수 있게한다"며 "현재 자영업자들의 목소리가 크게 대변되는 것은 결국 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논리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재원을 위해 일각에서 제기됐던 한국은행의 국채 직접인수론에 대해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건드리는 것은 소탐대실"이라면서 "돈을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올 수밖에 없다. 통화를 발행해서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지원금 편성 등을 위해 여당에서 제기되는 증세론에 대해서는 "증세가 필요한 건 사실이나 정치권에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위험하다"며 "정부가 세제를 바꿀땐 사각지대 등을 검토하며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거치나 국회입법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않는다. 조세 제도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소득세 인상과 같은 부자 핀셋증세는 부자걸 뺏어서 가난한 사람한테 주겠다는 로빈후드 택스(Robinhood Tax·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수익 기업또는 개인에 부과하는 세금)인데 정치적 효과는 있으나 경제적 효과는 불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정진욱 교수는 지난 19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한국 경제는 비교적 선방했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공근로 비중이 너무 컸다”며 “정부가 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을 버려야한다”며 “”./ 박상훈 기자.

◇韓 경제 선방했지만 생산성 낮은 ‘재정 일자리’ 기여 높아

정 교수는 지난해 한국경제 성과에 대해 ‘비교적 선방’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정부 재정 기여도 특히 재정 일자리 기여도가 높은 점을 지적했다. 성장률 수치를 맞추기 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공근로를 늘리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늘어난 재정 일자리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인 고용 역시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선 정부가 나서 직접 해결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시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재정일자리는 경제학자의 시각으로 볼때는 아주 나쁜 정책이다. 똑같은 임금을 더 생산성이 높은쪽에 주면, 경제에 미치는 생산성 증진 효과가 있다. 하지만 공공근로는 단순 잡일인데, 돈을 주기 위해 없는 일을 만들어내 사회적 생산성이 오히려 떨어진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고,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코로나 이후의 구조개혁은 철저히 시장의 힘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다행인 것은 외환위기때와는 달리 우리 금융권이 견조하게 버티고 있어 내수만 회복된다면 상당히 빠르게 경제가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백신 접종 속도를 감안했을때는 빨라야 연말쯤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보여 내년 1분기 정도에야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부동산 정책은 하책(下策)…양도소득세 일시 완화해야

다만 정 교수는 최근의 아파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주식 ‘빚투(빚내서 투자)’ 등으로 폭증하고 있는 민간부채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나타냈다. 그는 "경제의 금리 민감도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지만 정부에게 제대로 싸울 무기가 없다"면서 "한은 금통위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현재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주원인은 결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원인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세금을 올려 거래를 막아 퇴로를 막고, 대신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공물량을 공급하겠다는 정책은 하책(下策)라는 것이다. 그는 "결국 우리 경제의 모든 문제는 부동산과 맞닿아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과 불로소득을 막자는 것은 두 개가 서로 충돌하는 가치인데, 전자가 훨씬 중요한데도 후자만 추구하느냐 소득불균형보다 자산불균형이 훨씬 더 심해졌고 종국에 이 정부가 추구하는 모든 가치가 다 망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개발은 생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이윤동기가 없고, 의사결정기간이 매우 길다. 신속한 대응도 어렵고, 결정적으로는 정부가 뛰어드는 순간 경쟁이 사라진다는 점이 문제다. 경쟁은 가장 빨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인데, 과연 정부가 직접 공급하는 것이 민간보다 좋은 결과를 내겠는가"고 덧붙였다.

그가 제시한 상책(上策)은 양도소득세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출구를 열어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집값잡기는 간단하다. 양도소득세를 낮춰 퇴로를 열어줘야하는데, 이념적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면 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면서 "만약 공급을 대폭 늘린다고 해도 경착륙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순간에는 일본의 버블붕괴 보다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교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하며 "경제정책에는 여러가지도 있으니 C 학점도, A 학점도 있다. 한가지 짚고 싶은 것은 이 정부만큼 ‘선의’를 가진 정부가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그간 의도는 좋았어도 결과는 좋지 않았던 사례가 많았다"면서 "경제를 한쪽 방향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좋은 결과를 위해 시각을 바꿔야할 때"라고 조언했다.

정진욱 경제학회장은 지난 19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부동산 정책은 하책”이라면서 “양도소득세를 일시 완화해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정진욱 교수는

정진욱 교수는 올해부터 한국경제학회를 이끈다. 1952년 11월 30일 출범한 한국경제학회는 국내 최대 경제학회로 회원은 5000여명에 이른다. 정 교수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학자로 국내에서는 계량경제학 전문가로 꼽힌다. 정 교수는 한 해 동안 경제학회를 이끌어가는 포부를 밝히며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다. 대선 등 본격적인 선거 국면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학회는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1961년 서울 출생
▲1983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90년 미국 플로리다대 계량경제학 박사
▲한국응용경제학회 ‘응용경제’ 편집위원장
▲한국계량경제학회 계량경제학보 편집위원
▲한국경제학회 편집위원 사무차장
▲한국경제학회 회장(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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