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착한가게·친환경·한정판.. '휘소가치'엔 아낌없이 지갑 연다

변희원 기자 입력 2021. 03. 01. 03:33 수정 2021. 03. 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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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MZ세대 탐구] [下·끝] 독특한 소비, 유통·제조업까지 바꿔

#1 최근 홍대에 있는 한 치킨 프랜차이즈 가게 사장이 생계가 어려운 10대 형제에게 치킨을 대접한 사연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퍼졌다. 그러자 지난 26일부터 20~30대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카페에선 “이 가게에 ‘돈쭐’을 내러 가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돈쭐이란 ‘돈으로 혼쭐을 내준다’는 뜻으로 업체나 업주의 선행에 소비자가 적극적인 구매로 보상해 준다는 뜻이다. 자신의 지갑을 열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MZ세대식 소비자 운동’이다. 주문 폭주로 한때 이 치킨집 영업이 마비될 정도로 반향이 컸다.

#2 가수 지망생인 장원희(25)씨는 지난해 시간만 나면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끼니를 대부분 편의점에서 해결하며 번 돈을 고스란히 모았다. 그가 첫 달 모은 돈 중 200만원으로 산 것이 나이키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가 협업해 내놓은 운동화 ‘에어맥스 90’이었다. 이후에도 한정판 명품을 꾸준히 사고 있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명품을 사는 걸 허영심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것들”이라고 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에게 가장 중요한 소비 기준은 ‘가치’다. 친환경, 동물권, 성평등 등 신념에 따라 소비하고, 때로는 명품에 지갑을 연다. 얼핏 상반돼 보이지만, MZ세대는 이런 소비 행태를 통틀어 ‘휘소(揮少) 가치’라고 부른다. 경제학 이론에서 가격결정 요인 중 하나인 ‘희소(稀少) 가치'를 비틀어 만든 신조어로, 제품·서비스의 가격이나 품질 같은 일반적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에 따라 합리적 소비를 하는 MZ세대 소비 행태를 설명하는 신조어다. 이런 MZ세대는 소비 시장뿐 아니라 기업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소비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MZ세대에게 소비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글로벌 커머스 마케팅 기업 크리테오의 조사 결과, MZ세대의 52%는 ‘친환경·비건 등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맞는 소비(미닝아웃·meaning out)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상품·브랜드엔 구매로 지지를 표현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불매운동을 한다. 기업주 ‘갑질 사태’가 벌어진 프랜차이즈 등에 대한 끈질긴 불매운동의 뒤엔 MZ세대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픽=김하경

품질·가격만 따지지 않는 MZ세대 때문에 유통·제조 업체들이 변하고 있다. 20~30대가 고객의 절반을 차지하는 마켓컬리는 배송 박스를 스티로폼 → 은박 비닐을 붙인 종이 박스 → 재생지 박스로 계속 교체하고 있다. 2019년에는 아예 포장을 연구·개발하는 팀을 따로 만들었다. 마켓컬리 측은 “20·30대 소비자들은 배송 품질보다는 상대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 등 환경 관련 요구를 더 많이 한다”며 “이런 소비층을 잡기 위해선 사업 판단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MZ세대는 산업의 흐름까지 바꾸고 있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카이즈유’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테슬라의 세단형 전기차 ‘모델3’ 7675대 가운데 20~30대가 절반 가까운 3409대(44.4%)를 샀다. 보조금을 적용해도 4000만원 안팎인 고가 차량이다. 작년 이 차를 구매한 윤모씨(36)는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큰 맘을 먹었다”고 했다. 김필수(대림대 교수) 전기차협회장은 “최근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한 데는 환경 규제 이외에 친환경 이슈에 민감한 MZ세대가 자동차 시장의 주소비층이 됐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소비는 자신을 보여주는 도구

MZ세대는 소비를 통해 가치관뿐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나 기호 등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MZ세대는 전기차 이외 수입차·고급차의 주소비층이기도 하다. 지난해 팔린 수입차 30만대 중 개인 구매자의 37.1%가 20~30대였다. MZ세대가 고급차에서 원하는 것은 주행 능력이나 안전성이 아니라 차에서 내렸을 때 타인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하차감’이다.

MZ세대는 명품을 통해 능력과 지위를 확인받고자 한다. 과거엔 연예인들이 자기 소유의 빌딩이나 명품을 대중에게 숨기려고 했다면, 지난 10년 새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누린 래퍼들은 집이나 차, 보석 등을 과시하는 ‘플렉스’(부를 과시하는 것)를 하면서 유명해졌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명품 매출에서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8년 38.2%에서 2019년 41.4%, 2020년 44.9%로 상승했다. 명품 브랜드도 MZ세대를 겨냥해 화려하고 로고가 눈에 띄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MZ세대는 자신의 능력으로 비싸고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은 ‘공정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명품을 사는 데 거리낌이 없다”며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소비를 한다”고 말했다.

☞휘소가치

‘희소(稀少)가치’에서 드물다는 뜻의 ‘희(稀)’ 대신 흩어진다는 의미의 한자인 ‘휘(揮)’를 넣어 만든 신조어. 다른 사람에게는 휘발성이 강하고 무의미해 보이지만, 자신에게는 가치가 있는 것을 소비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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