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One]그 많던 네덜란드 풍차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2021. 2.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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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의 작은 도시 우얼르(Oerle)에 위치한 신트 얀( Sint Jan) 풍차의 모습. 코로나 봉쇄 이전에는 동네 주민들에게 맛난 빵과 음료를 판매하는 식당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 차현정 통신원

(에인트호번=차현정 통신원) = 흔히 네덜란드를 떠올리면 형형색색의 예쁜 튤립과 풍차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직접 네덜란드에 와보면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풍차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풍차의 나라'는 옛말

땅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에서는 간척지를 만들기 위해 물을 퍼내는 용도로 풍차가 사용되었다. 용도에 따라 풍차를 부르는 이름도 달라졌는데 곡물을 찧는 방아 풍차, 치즈를 젓는 치즈 풍차 등이 일상에서 활용되었다.

17세기에는 약 600개가 넘는 풍차가 모여 있던 네덜란드의 잔세스 스칸스(Zaanse Schans) 지역이 산업 지역으로 급성장한 1등 성장 요인은 단연 풍차였다. 수로와 해상 무역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전달된 카카오, 쌀, 목재 등을 풍차를 이용해 가공제품으로 만들고 유럽 각 나라로 재수출하며 부를 쌓았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잔세스 스칸스에 가면 풍차 박물관이 있고 그 지역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풍차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관리의 어려움과 효율성을 이유로 수천 개가 넘던 풍차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전국적으로 1000개 정도의 풍차만이 남아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풍차가 많이 사라지고 그나마 남아있는 풍차들은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통 지키는 20대 청년…"풍차 방앗간으로 밀가루 사러 오세요!"

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의 작은 도시 우얼르(Oerle)에는 젊은 청년이 모두가 떠난 오랜 풍차를 지키고 있었다.

사라져가는 네덜란드의 전통 '풍차'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십대 청년 욥 반 하젤. © 차현정 통신원

욥 반 하젤(Jop van Gassel)은 앳된 얼굴로 뉴스1 취재진에게 풍차 내부를 안내했다. 몇 달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 봉쇄로 이미 풍차 내부의 레스토랑과 빵집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일하던 여러 직원들도 풍차를 떠났지만 욥은 지금도 매일 출근하여 밀가루를 빻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코로나 정책으로 레스토랑은 닫았지만 아직도 우리 풍차에는 밀가루를 구매하려는 고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고객들이 미리 주문을 하면 밀가루를 빻아 놓고 예약제로 판매 중입니다."

처음 전면 봉쇄가 실시되었을 때 네덜란드 전국의 슈퍼마켓에서는 밀가루 품귀 현상이 잦았다. 모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식인 빵을 만드는 밀가루는 필수 품목이었고 사재기가 극심했다.

"밀가루 사재기 때문에 우리 풍차 방앗간은 코로나 특수를 누렸죠. 고객들이 십 킬로 이상의 큰 포장 단위의 밀가루를 사려고 줄을 설 정도였어요."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생산된 질 좋은 밀을 직접 빻아 빵으로 바로 만들 수 있는 믹스 제품과 네덜란드의 전통 요리 중 하나인 파네쿠큰(얇은 팬케이크의 일종) 가루가 제일 인기 품목인데, 이 방앗간 제품을 한번 맛본 단골 고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네덜란드 고객들만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밀가루를 주식으로 먹는 인도, 이탈리아, 터키 등의 네덜란드 거주 이민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자 마케팅 방식을 네덜란드어에서 영어로 바꾸었지요. 고객들의 주문을 미리 받기 위해 영어로 소셜 미디어를 운영 중이고 홍보 효과가 매우 좋습니다."

◇사라져가는 풍차를 지키기 위한 노력

그가 일하는 신트 얀(Sint Jan) 풍차는 이 지역의 유명한 풍차다. 1987년 개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짓는 과정 당시의 사진과 설명 자료 등을 모두 모아 놓아 풍차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옥수수를 빻는 용도로 제작된 신트 얀 풍차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맛난 빵과 밀가루를 파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멀리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욥 반 하젤( Jop van Gassel)은 풍차 방앗간에 예약을 하고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직접 곡식을 찧는 모습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이 매우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매주 신선한 밀을 네덜란드와 독일 등지에서 가져와 직접 빻아 판매하고 있다. © 차현정 통신원

몇 해 전 풍차에서 관광객 안내 자원봉사를 하던 욥이 운영을 맡게 되면서 활기를 되찾았지만 코로나 감염증 사태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직접 빻은 신선한 밀가루 예약 판매로 살길을 모색 중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현재 100년이 넘은 풍차를 보존하기 위해 정부 운영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우리 풍차는 해당 사항이 없어요. 그래서 저처럼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풍차 운영에 도움을 주거나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속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풍차는 네덜란드의 상징인데 모두가 떠나는 게 아쉬워서 제가 남기로 했어요."

풍차는 여러 기계로 연결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관리되고 수리를 자주 받아야 하는데 풍차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술자들을 불러서 점검을 받으려면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욥씨는 말했다.

◇매년 5월 풍차 방문의 날

매년 5월 둘째 주 주말은 네덜란드 풍차 방문의 날이다. 관람권을 소지한 관광객은 네덜란드에서 지정한 900개 이상의 풍차에 횟수 제한 없이 방문할 수 있고 풍차가 지어진 배경과 용도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숙박을 함께 제공하는 풍차도 있어 관광객들뿐 아니라 네덜란드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날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 감염증으로 인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네덜란드 관광청과 풍차 관리인들은 온라인 투어 등을 통해 전통이 이어지도록 노력 중이다.

chahjli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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