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90% "신고하니 불이익 돌아와"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입력 2021. 2. 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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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직장갑질119 토론회 개최.."사용자가 직접 엄단해야"
68% "괴롭힘도 동시에 경험"..애초 미신고도 60% 넘어
"직접고용 아니면 해당사항無" "조치의무 위반 철저 감독해야"
직장갑질119 제공
#1. "같은 회사의 남자 직원의 성희롱에 대해 항의하고 피해를 호소했는데, 사측에서는 성희롱 사안임을 은폐하고 해당 직원을 좋아한 것처럼 공개적으로 모욕했습니다. 성희롱임을 알리고 헛소문이라고 하자, 사장님은 매주 전체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일에 피해자를 모욕하는 내용을 넣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포상까지 연속해서 받았는데, 갑자기 업무평가도 '최하'로 바뀌었고 이듬해에는 업무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2. "사내 3명의 피해자 중 한 사람입니다. 가해자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아직도 그 사람을 불쌍해하는 사람이 많아요. 사건이 발생한 후에 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일이 좀 생겼는데 저희를 엄청나게 탓하더라고요. 이제는 '합법적으로' 괴롭힐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상여금도 안 나오고, 내부에서 눈치를 주며 따돌립니다. 성추행 사건 이후 손익이 반으로 줄었다고 구박하기도 했어요."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는 피해자들의 60% 이상은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렵게 피해사실을 알리더라도,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다'는 인원이 9할을 넘어서는 것으로 파악됐다.

1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3년간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총 1만 101건을 살펴본 결과,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제보가 486건(4.81%)에 달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중 구체적 사건내용까지 확인이 가능한 364건의 메일을 분석한 결과, 89%가 수직적 위계관계에서 발생했고, 가해자가 사업주거나 대표이사인 경우는 29.4%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자의 68.7%는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을 동시에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성희롱 피해를 신고하지 않은 비율이 62.6%로 신고한 쪽보다 훨씬 많았다. 실제 신고 이후 다양한 불이익을 당했다는 인원이 무려 90.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는 이러한 조사내용을 토대로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권인숙 의원 등과 함께 토론회를 개최했다.

직장갑질119 윤지영 변호사는 "가해자가 권력관계의 최고봉에 있는 법인의 대표이사, 사업부서의 본부장 등일 경우 직장 내 성희롱은 성적 언동을 뛰어넘는다. 행위자들은 피해자의 사생활에 개입하고, 업무와 무관한 명령을 하며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인사권한을 남용한다"며 "행위자와의 관계 때문에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조직의 수장에게 이에 따른 징계를 상정하기도 쉽지 않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고용형태의 차이가 권력관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규직·직접고용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갖는 고용상 이익, 불이익을 줄 권한이 직장 내 성희롱으로 귀결된다"며 "하지만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직장 내 성희롱을 인정하기 때문에 원청 직원이 하청업체 소속 직원을 성희롱하는 것은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직장 내 성희롱은 근본적으로 '성차별적 근무환경'이 기반된 문제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이를 직접 엄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장갑질119는 "신고에도 불구하고 묵인, 방치 등 사업주가 조치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제보 건수는 41.5%에 이른다. 조사를 지체하거나 피해자에게 조사 관련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고,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행위자에 대한 징계조치가 중요한 이유는 또 다른 피해를 막고 건강한 근무환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직장 내 성희롱 문제해결은 행위자와 피해자 간 일회적 사건처리가 아니라 조직규범과 문화를 확립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 대법원이 르노 삼성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두고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 피해근로자 등에 대한 불리한 조치가 성희롱과 관련성이 없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점에 대해 사업주가 증명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판례를 들기도 했다.

개선방안으로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금지조치 위반에 대해서도 처벌규정을 만들 것 △가해자 및 피해자 범위를 현행법 규정보다 확대할 것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사업주가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구제의무를 부담할 것 △피해자가 객관적이고 실효성 있는 독립기구를 통해 조사와 실질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 등이 꼽혔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신상아 회장은 "지난 2016년 직장 내 성희롱으로 상담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발생 후 6개월 이내에 82%가 퇴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희롱이 고용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계약직이나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고용이 더욱 불안하기 때문에 이런 2차 불이익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문제제기 자체가 요원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고충처리절차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다고 알려진 서울시였지만, 시장실 직원 성희롱 예방교육 이수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며 "세부적인 것까지 촘촘히 구성할 필요가 있다. 회의 시 지켜야 할 원칙, 업무 배치 시 원칙, 회식할 때 원칙 등 구성원 스스로 체화될 수 있도록 일상적인 실천과 점검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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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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