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오빠'가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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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란 무엇일까요.
표준국어사전은 오빠를 '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정의하지만, 실생활에서 '오빠'는 미묘한 뉘앙스를 가집니다.
오죽하면 나이 어린 남성 연예인을 가리켜 '어빠'(어린 오빠)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요.
다시 말해 사회적 맥락에서 '오빠'는 가부장적 질서를 내재하고 있는 호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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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소리는 자신의 남편인 장준환 감독보다 4세 연하이지만,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감독님’ 혹은 ‘여보’라는 호칭을 쓰지요. 이유가 뭘까요. 문소리는 지난 30일 방송한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빠’라고 하면 남자들은 여성을 조금 귀여워하는 것 같고…. 부부관계일수록 ‘내가 나이가 많지’ ‘너는 나보다 어리지’ ‘너는 나한테 귀여운 존재지’,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었어요.”
‘오빠’라는 호칭은 때로 연상의 남성에게 나이권력과 젠더권력을 동시에 쥐어주는 도구가 됩니다. ‘너는 나에게 귀여운 존재’라는 전제 속에서 연하의 여성은 미성숙한 존재로 끌어내려지고, 반대로 연상의 남성은 보호자로서 권위를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맥락에서 ‘오빠’는 가부장적 질서를 내재하고 있는 호칭입니다. 그리고 문소리는, ‘전지적 참견 시점’ 측이 자막을 통해 설명한 것처럼 “부부관계일수록 동등한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오빠’라는 호칭을 지양하기로 한 겁니다.
‘남성 배우자에게 귀여움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출연자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짧아 MC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제3자를 압박하는 것. ‘전지적 참견 시점’이 보여준 태도는 둔감하다기보다는 졸렬하게 느껴집니다. 방송 초반 MC들이 츄의 ‘깨물 하트’ 애교를 문소리에게 요구한 것 역시 이후의 ‘오빠’ 소동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 의미심장합니다. 이 모든 소란들이 의도하는 그림은 오직 한 가지. ‘센 언니 문소리, 알고 보면 천생 여자’ 뿐이거든요. 여기에 당사자에 대한 존중은 없습니다. 떨쳐내지 못한 성별 고정관념과 출연자의 ‘반전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나태한 야심이 빚어낸 촌극입니다.
2021년에도 TV에서 ‘오빠’ 타령을 듣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습니다. 23년차 배우마저도 애교를 요구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방송 직후부터 1일 오후까지 ‘전지적 참견 시점’ 홈페이지 내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400여개에 달합니다. 직전 일주일동안 올라왔던 글이 20여개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소리를 향한 발언에 뿔 난 시청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참견이 필요한 이들, 그리고 그 참견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은 ‘전지적 참견 시점’의 제작진과 진행자이지 않을까요.
wild37@kukinews.com / 사진=MBC ‘전지적 참견 시점’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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