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허' '호' 번호판 몰다 돈폭탄 맞는 대리기사..내년부터 사라진다

김기찬 입력 2020. 12.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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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기사 A씨는 지난달 서울동부지법에서 재판을 받았다. 2019년 대리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걸 두고서다. 당시 A씨는 대리운전회사의 단체보험에 들었던 터라 사고처리 비용은 그 보험으로 충당될 줄 알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수백만원의 수리비를 물어내라는 구상 청구서가 날아왔다. 렌터카공제조합으로부터다. 당시 A씨가 운전했던 차량이 장기 렌터카였던 게 화근이었다. 렌터카 업체의 약관과 계약서에 따르면 수리비를 꼼짝없이 물어내야 할 판이었다.


렌터카 약관상 대리운전 불가…사고 나면 대리기사에 사고처리비 청구
이유는 약관과 차량 임대차계약서에 명시된 '제3자 운전금지' 조항 때문이다. 렌터카의 차주는 렌터카 회사다. 따라서 주인(회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제3자가 운행할 수 없다. 주인(회사)으로부터 차를 빌린 사람(렌터카 임차인)이 의뢰해 대리운전하는 것은 차주의 뜻에 반하는 행위이자 약관위반이 된다. '하' '허' '호' 번호판은 차량을 빌린 사람이 별도의 특약을 렌터카 회사와 맺지 않은 이상 무조건 대리운전이 금지된 셈이다. 대리운전을 하다 사고라도 나면 대리기사는 꼼짝없이 이 약관의 덫에 걸린다.

이런 이유로 대리운전기사는 수년 동안 속수무책으로 구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같은 보험 처리 비용 구상 청구 건수는 2년여 동안 4배나 불어났다. 영문도 모르게 돈 폭탄 피해를 보는 대리기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0월21일 오후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앞에서 열린 '대리운전 보험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원 등 참석자들이 관련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내년 렌터카 대리운전 약관 개정…법원도 "물어줄 필요없다" 판결
내년부터는 대리운전기사가 렌터카를 운전하다 사고를 내더라도 수리비를 무는 일은 사라질 전망이다. 정부가 '자동차대여 표준약관'을 개정해 렌터카 운전 사고에 따른 손해액을 보험회사나 렌터카공제조합 같은 곳에서 대리운전기사에게 구상 청구하는 것을 막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서울동부지법은 지난달 11일 A씨가 구상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판결 전에 서울동부지법은 소액재판임에도 불구하고 변론을 들었다. 소액재판은 판결까지 대체로 5분을 넘기지 않고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서울동부지법이 이례적으로 변론기일을 잡자 구상 소송의 사회적 합리성을 따지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양측의 주장을 들은 법원은 "장기렌터카를 이용하면서 일시적으로 대리운전을 하는 것은 자동차의 통상적인 이용방법에 해당한다"는 등의 이유로 대리운전기사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정부는 내년 1월 중으로 보험조회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대리운전기사가 개인보험과 회사 단체보험에 중복 가입해 보험료를 낭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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