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장수 기업의 컬래버레이션 전략] "경동나비엔 발열내의 입고, 말표 흑맥주 마셔요"

이소연 기자 입력 2020. 11. 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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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분이 곰표 밀가루 오리지널 디자인을 차용해 내놓은 티셔츠. 사진 4XR

1967년 세상에 처음 나온 말표 구두약. 중장년층에겐 집 현관마다 아버지 구두 옆을 지키던 유년 시절의 추억으로, 젊은 세대에겐 ‘군대에서 전투화를 닦을 때 사용한 약’ 정도로 기억되던 상품이다. 한때 매년 1000만 개 이상 팔렸으나 구두 대신 운동화 출근이 늘면서 매출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그러나 말표산업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과 협업해 10월 8일 구두약의 검은색을 연상시키는 수제 흑맥주를 내놓으면서 젊은층 사이에서 ‘힙한(인기 있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50년 전 구두약 오리지널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해 출시된 이 맥주는 1초에 1캔 속도로 팔리며 출시 3일 만에 25만 캔이 완판됐다.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 기업들이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0~2004년생) 소비자를 대상으로 이색적인 협업 제품을 내놓는 컬래버레이션 마케팅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펀슈머(재미를 뜻하는 ‘펀’과 소비자인 ‘컨슈머’를 합친 신조어)’인 이들을 겨냥해 ‘재미있는 협업 스토리’가 있는 의외성 있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장수 기업들은 MZ 세대에게 덜 친숙한 자사 브랜드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젊은 브랜드를 찾아서 ‘리미티드(한정판)’ 제품을 만든다. 그리고 젊은 세대는 마치 한정판 신발 ‘리셀(되팔기)’에 열광하듯 호응한다.

특이하게도 이러한 장수 기업이 주력으로 생산하는 제품을 소비하는 계층은 MZ 세대가 아니다. 말표 흑맥주의 원조 격인 ‘곰표 밀맥주’를 먼저 BGF리테일과 출시했던 대한제분 역시 밀가루 매출의 대부분이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B2B(기업 간 거래) 중심 기업이다. 역사가 깊은 기업들은 중장년층이 주요 구매층인 경우도 많다.

현재 주요 구매자가 MZ 세대가 아닌 기업들도 고착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젊은 세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소비 운동과 트렌드 형성에 앞장서는 젊은 세대가 실제 제품 구매 여부를 떠나 가장 핵심적인 마케팅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황장선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MZ 세대가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소비자인 오피니언 리더이자 의사결정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잠재적 소비자인 이들을 대상으로 미리 마케팅을 해야 미래에 최초 소비를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조선’은 신선한 컬래버레이션 제품으로 MZ 세대 소비자에게 주목받고 있는, 오랜 전통의 기존 기업과 협업 기업 마케팅·홍보 담당자들과 전문가들에게 이러한 마케팅 전략을 선택한 이유와 기대하는 효과, 주의점에 대해 물어봤다. 

말표산업이 말표 구두약 디자인을 차용해 내놓은 말표흑맥주. 사진 BGF리테일

포인트 1│사업 확장에 따른 이미지 변화

사업이 확장되면서 수십 년 동안 대중에게 각인된 브랜드 이미지를 바꿔야 하는 경우, 기업들은 젊은 세대에게 변화를 인지시키기 위해 컬래버레이션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를 MZ 세대 소비자에게도 알리는 것이다.

지난 9월 이랜드의 의류 브랜드인 스파오와 경동나비엔이 선보인 ‘친환경 입는 보일러’ 발열내의 ‘웜테크’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내건 주요 브랜드 가치인 ‘환경’을 MZ 세대 소비자에게 협업 형태로 전달한 예다. 이 제품으로 양사는 내복을 입고 난방 에너지를 줄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절감하자는 환경 캠페인을 SNS와 TV 광고 등을 통해 진행했다. 경동나비엔은 자사 제품이 일반 보일러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이라는 내용도 추가했다. 

1978년 설립한 경동나비엔은 수년간 유지했던 ‘신뢰할 수 있는 보일러 제조 기업’에서 생활가전제품도 판매하는 ‘친환경 생활환경 기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변경하면서, 가치 소비에 관심이 많은 MZ 세대를 주요 마케팅 대상으로 설정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주 고객층은 4050 주부이며, MZ 세대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이 직접적인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며 “그러나 가치 지향적인 소비를 즐기는 MZ 세대가 브랜드 이미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경동나비엔과 스파오가 내놓은 ‘친환경 입는 보일러’ 발열내의 웜테크가 전시된 매장. 사진 경동나비엔

포인트 2│MZ 세대에 친숙한 이미지 각인

오랜 세월 유지해 온 브랜드 이미지를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더욱 강화하고 싶은 경우에도 기업들은 이들이 브랜드를 보다 친숙하고 가깝게 인지할 수 있도록 컬래버레이션 전략을 활용한다. 

동아제약은 1963년 출시한 스테디셀러 ‘박카스’가 MZ 세대에게 다소 ‘올드(old)’한 브랜드 이미지로 인식되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예스24와 ‘박카스 굿즈’를 10대 학생과 대학생을 주요 타깃으로 10월 15일 내놓았다. 박카스를 형상화해 만든 북 파우치(책을 넣는 작은 주머니), 책갈피, 보온 가방, 이동용 서랍장을 예스24를 통해 판매한 것이다. 예스24 관계자는 “서적 구매를 많이 하고 책을 외부에 가지고 다니는 일이 많은 어린 학생들이 박카스를 공부로부터의 피로 해소와 연상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1970년 창립된 조미 김 제조 업체인 광천김 역시 기존 김의 식감인 바삭바삭함을 MZ 세대에게도 강조하기 위해 게임 업체 펄어비스와 협업을 진행했다. 게임 ‘검은사막’의 캐릭터가 등장한 김 포장지에는 ‘김은사막’이라는 글자와 함께 ‘사막의 열기로 바싹 구운 광천김’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제품 구매자에게 게임 아이템 쿠폰을 5장씩 지급하기도 했다. 광천김 관계자는 “유아 자녀가 있는 주부를 대상으로 ‘아기상어’로 유명한 핑크퐁과 제휴하기도 했으나 여기서 더 나아가 혼자 사는 MZ 세대도 광천김을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동아제약과 예스24가 내놓은 박카스 관련 상품. 사진 예스24

포인트 3│협업은 ‘핏(관련성)’이 있어야

다만 전문가들은 기존 브랜드와 협업 대상 브랜드 간의 ‘일치성(fit)’이 부족한 협업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재현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 대표는 너무 다양한 브랜드와 빈번한 협업은 “기존 브랜드 충성 고객의 이탈을 불러오고, 장기적인 기대 효과도 누릴 수 없다”며 “유행이 빠르게 바뀌고, 콘텐츠를 쉽게 소비하는 MZ 세대의 ‘스낵컬처’에 단순히 편승하며 관련성 없는 기업과 마구잡이로 협업을 진행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곰표 마케팅을 담당한 김익규 대한제분 마케팅팀장은 유사한 속성을 가진 브랜드와 제한된 협업을 진행해야만 브랜드 이미지를 하나로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곰표의 ‘곰’이라는 캐릭터와 알맞게 빅사이즈 남성 의류를 판매하는 온라인 패션몰 포엑스알(4XR)과 ‘곰 같은 덩치’의 남성들을 위한 넉넉한 곰표옷을 만들었고, 하얀 밀가루의 특성과 맞게 미백효과가 있는 화장품 업체와 함께 곰표 팩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협업 제안이 들어왔으나 브랜드가 추구하는 푸근하고, 새하얀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는 브랜드만 철저한 기준하에 선정했다고 강조했다.

MZ 세대 전문 연구소인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이재흔 책임연구원은 컬래버레이션 제품 출시를 위해 직접 브루어리(맥주 양조장)에 보다 진한 주조법을 동원한 흑맥주 제조를 의뢰했던 말표산업의 예를 들며, “단순히 제품 패키지 디자인만 바꿀 것이 아니라 브랜드 ‘핏’을 강조하는 제품을 아예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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