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고병권의 묵묵]두 번째 사람 홍은전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입력 2020. 10. 12.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세상에는 두 번째 사람이 있다. 심보선 시인은 바로 시인이 그렇다고 했다. 시란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면서 쓰는” 거라고. 첫 번째 자리는 슬픔의 자리이지 글의 자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슬픔에 관한 첫 번째 글은 두 번째 자리에서 나온다. 그런데 어찌 시인만이겠는가. 세상에는 시인 말고도 두 번째 사람들이 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내가 세 번째, 네 번째 자리에서 지켜본 사람 홍은전 작가도 두 번째 사람이다. 그가 선 자리는 세상에서 제일 많이 비어 있는 자리다. 첫 번째 자리에도 사람이 가득하고, 세 번째, 네 번째 자리에도 사람이 가득한데 두 번째 자리는 그렇지 않다. 세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이 슬퍼했다거나 분노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의 통곡 소리를 듣고 시뻘게진 눈알을 본다. 무엇보다 두 번째 사람이 선 자리는 첫 번째 사람이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소매가 잡히는 자리다. 그걸 알기에 나는 세 번째에 서고, 겁이 날 때는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도망친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많기에 세상의 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서 운다. 덩그러니 혼자 남아 흐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홍은전은 두 번째 사람이다. 그가 써온 글들은 온통 첫 번째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그의 귀에 대고 온 힘을 짜내 ‘나가고 싶어’라고 말하는 시설장애인, 추모공간을 짓게 해달라며 자식들의 ‘유골을 업은 채’ 주민들에게 ‘떡을 돌리는’ 세월호 참사 유족, 거울에 비친 사람을 부인하며 ‘1년 넘게 거울을 보지 않은’ 화상 경험자, 어린 시절 납치되듯 끌려가 상상하기 힘든 학대를 당하고 ‘누군가를 해치고 싶은 충동이 생기면 그걸 참느라 눈알이 시뻘게졌다’는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의 수용자들.

시설장애인·세월호 참사 유족…
첫 번째 사람의 통곡 소리를 듣고
그들이 손 내밀 때 소매 잡히는 이
가장 많이 비어있는 ‘두 번째 자리’

이들 첫 번째 사람을 기록하는 마음을 홍은전은 삭발 투쟁하는 유족의 머리를 밀어주며 ‘죄송해요’라고 말하던 여성의 마음에 비유했다. “바라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안심하고 자기의 슬픔을 맡겨주는 것이고, 나는 되도록 그의 떨림과 두려움을 ‘예쁘게’ 기록해주고 싶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장애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은가 신경이 쓰인다”고. 이렇게도 말했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을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고.

이번에 그의 글을 묶어 낸 책 <그냥, 사람>(봄날의책)이 나왔다. 나는 이 책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나는 신문을 겨드랑이에 끼고는 ‘호외요’를 외쳤던 옛날의 신문판매원처럼 이 책이 나왔다고 떠드는 날을 기다려왔다. 이 작가의 삶을 존경하고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에 얼마 없는 두 번째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리는 기회로 삼기 위해서였다.

책의 제목은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이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조직한 박경석의 말에서 따왔다. 대학 시절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 박경석은 복지관에서 만난 장애운동가 정태수를 이렇게 기억했다. “나는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내가 그 불쌍한 장애인들 속으로 떨어졌으니 인생이 비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 태수가 왔지. 그런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정태수를 박경석은 그렇게 기억했고, 박경석을 홍은전은 그렇게 기록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앞에서 ‘그냥,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본 두 번째 사람들이다.

시도 그렇지만 윤리도 그렇다. 모두가 이 두 번째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다. 결코 원하지 않아도 누구나 첫 번째 사람이 될 수 있고, 굳이 원하지 않아도 누구나 세 번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은 그렇지 않다. 첫 번째 사람의 소리와 몸짓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 홍은전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아가면서 앓아가는 사람, 무지개를 만나기 위해서 비를 견디는 사람만이 두 번째 사람이다. 이런 수신기, 이런 기록장치, 이런 발신기가 있어서 우리의 세상은 그나마 덜 외롭고 덜 황량하다.

두 번째 사람 홍은전의 글들은 후원 계좌번호를 적거나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을 적는 것으로 끝난다. 부디 여기를 후원해달라고, 부디 이 방송을 보아달라고. 나도 똑같이 이 글을 맺어야 할 것 같다. 부디 이 책을 읽어주시길 바란다(추신: 홍은전은 이제 비인간 동물의 슬픔을 기록하는 인간 동물이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 충혈된 눈을 하고 있는 첫 번째 동물 곁을 지키는 ‘두 번째 동물’이 되기로).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