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보단 한국" 난민 2만명 몰린다는데, 정부 대비책이 없다

강광우 2020. 6. 19.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몰려오는 난민, 준비 안된 한국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
난민 신청인들이 10일 서울 목동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통역의 도움을 받아 난민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0일 오전 9시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업무가 시작되기 전부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난민 인정 신청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한쪽 대기실은 난민 심사를 위해 긴장한 모습의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제 교류가 차단돼 한산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달들어 12일까지 서울청에 신청한 난민 건수만 57건에 이른다.

임선봉 난민과장은 “1월에는 100여명의 난민 인정 신청자들이 새벽 4시부터 줄을 섰다”며 “코로나19 이후 한 해 난민 신청 인원은 총 2만명이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난민 인정 신청 동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5년 새 난민 신청 10배 급증
18일 법무부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에 난민법이 시행된 이후 난민 인정 신청 건수는 10배 이상 급증했다. 2013년 1574명에서 2018년 1만6173명으로 매년 30~100% 수준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1만5451명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1월(1171명), 2월(1139명) 난민 인정 신청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각각 16%, 30% 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제 교류가 제한되기 시작한 3월부터는 신청자가 다소 줄고 있다. 그래도 올해 6월12일까지 난민 신청자는 5143명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한국의 선진적인 방역 체계 등을 이유로 한국행을 택하는 난민들이 더 늘어 올 한 해 2만명(대기 수요 포함)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현장에서 만난 이집트 국적의 심사 대상자는 “유럽은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이 심한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한 난민심사담당관은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피하려는 목적도 많지만 (난민 인정 사유가 아닌) 경제적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경우도 많다”며 “법이 인정하는 난민을 골라내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난민 신청인이 10일 서울 목동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통역인(왼쪽)의 도움을 받아 난민 심사를 받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국서 떠나라” vs “국제 위상 고려해 받아라”
한국인들에게 난민은 아직 낯선 존재다. 낯선 만큼 난민들에 대한 인식도 단편적이다. 경제적 갈등, 사회 불안을 우려하는 강경한 배타주의와 우리 사회의 수용 역량에 대한 현실적 고려 없는 막연한 인도주의로 나뉜다.

2018년 예멘 난민 561명이 무사증(무비자) 입국 제도를 통해 제주도에 입국해 대거 난민신청을 했을 때 이런 경향은 두드러졌다. 당시 한국리서치의 ‘예멘 난민에 대한 한국사회 인식 보고서’를 보면 예멘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은 24%, 반대 입장은 56%였다. 7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했다.

반면 인권 단체 등은 한국 정부가 국제적 위상에 맞게 인도주의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한다. 현실적 수용 능력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는 곤혹스럽다. 한국의 난민 인정 수준은 세계 평균에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한국 정부의 난민 인정률(2020년 4월 기준)은 3.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4.8%)보다 매우 낮은 편이다. 인도적 체류허가를 포함한 난민 보호율 역시 11.4%에 그친다.

난민의 정의와 인정 절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난민 신청 2만명+α 시대' 지금부터 대비해야”

앞으로가 문제다. 5년 뒤, 10년 뒤에 한국을 새로운 정착지로 생각하는 난민이 얼마나 늘어날 지 가늠하기 어렵다. 찾아오는 이들을 막을 수 없는 만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먼저 정부가 난민 종합계획부터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익법인 어필의 난민 전문 이일 변호사는 "난민이 늘어난다는 전제로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의 난민 문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 지 수용 능력부터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난민 심사와 처우, 국민들의 인식제고를 위한 대책 등이 종합적으로 담긴 난민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난민 신청 사유가 아닌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 후 도피 목적으로 한국에 온 경우는 난민협약 적용 배제 사유지만 정부는 수년에 걸친 절차를 모두 진행해야 한다”며 “무분별하게 재신청이 가능한 점 등 최소한의 견제 장치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신청 상위 국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증(비자)면제협정 체결을 가급적 최소화해 난민 수요를 관리할 필요도 있다. 지난해 난민 신청이 가장 많았던 국가는 러시아(2829명)와 카자흐스탄(2236명)이었다. 1994~2016년까지 러시아 난민 신청은 총 376명, 카자흐스탄은 587명에 불과했지만 최근 들어 급증했다. 각각 2013년과 2014년 사증면제협정이 체결된 게 주된 이유로 꼽힌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존 협정을 파기할 수는 없지만 중국 등 추가적인 협정 체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광우·박사라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