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 사려고 대리입금 ‘덥석’…1000%대 이자 폭탄에 ‘허덕’ [S 스토리]

이희진 2020. 6. 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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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넘기고 소액대출… 30만원이 반년 새 800만원 ‘뻥튀기’ / “제때 대출금 못 갚으면 신고하겠다” 되레 협박하기도 / 청소년들 ‘살인적 고금리’ 불법행위 인지 못한 채 주변에 ‘쉬쉬’ / 10만원 이하 소액은 대부업법 적용 안 돼… 제도 보완 시급 / 신제윤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장 / “뮤지컬·보드게임 등 접목 교육 정착 / 임기 내 흥미유발 교육 앱 만들 것”
#1. 고등학교 1학년 A(16)양은 돈을 맡기면 불려주겠다는 인터넷 글을 봤다. 혹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5만원을 대리입금으로 빌렸다. 일주일 뒤 이자 1만5000원(연 환산 이자율 1564%)을 더해 6만5000원으로 갚기로 했다. 불어서 돌아오리라 여긴 돈은 소식이 없었다. A양도 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했다. A양에게 돈을 빌려준 자는 “제때 갚지 못하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돈을 빌릴 때 이름, 휴대전화 번호, 집주소 등 개인정보도 알려준 상태라 A양은 이름도 모르는 그가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진 않을지 공포에 떨고 있다.
 
#2. 생활비가 필요했던 고등학생 B군은 SNS로 불특정 다수에게 30만원을 급하게 빌렸다. 이후 B군이 원금을 갚지 못하자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금액이 6개월 만에 800만원(연 환산 이자율 5100%)으로 늘어났다. B군은 협박과 갈취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의 상황을 알게 된 학교전담경찰관(SPO)은 지속적 면담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했고, 전문기관과 함께 B군의 학업 복귀를 지원하기로 했다.
 
청소년들이 급하게 소액의 돈이 필요할 때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모르는 사람에게 대출받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리입금’이라 불리는 이 행위는 보통 10만원 이하의 소액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에 갚는 식인데, 수고비 명목으로 받는 이자만 4만원에 달한다. 이 경우 연 환산 이자율은 2085%로, 법정 최고금리 기준인 24%를 훌쩍 넘는다.
청소년들은 주로 굿즈(특정 브랜드나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 등을 사기 위해 거리낌 없이 돈을 빌린다. 소액이긴 하지만 제때 갚지 못하면 불법 추심 등에 시달릴 수 있고,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돌려막기’를 하다 보면 채무불이행자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에 관한 무지가 청소년들을 무분별한 불법대출로 이끈다며 금융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청소년 울리는 대리입금

5일 경찰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대리입금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10만원 내외의 소액 현금을 단기간(일주일 이내) 대출해주며 일당 1만원가량의 고액이자를 요구하는 불법대출 수법이다. 주로 SNS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대출자는 이름,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 제때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지각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추가로 받는다. 일부 업자는 지각비로 시간당 2000원을 책정하는 등 높은 금리로 학생들을 몰아붙인다.

개인정보를 별 생각 없이 제공하다 보니, 돈을 갚지 못하면 청소년들이 불법추심(빌린 돈을 받아내는 것)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추심은 채권추심법에 따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데, 대리입금은 대출 자체가 불법이라 추심도 불법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야간에 찾아가 공포와 불안감을 유발한다거나, 가족이나 친구에게 돈을 대신 갚으라고 요구하는 행위 등은 모두 불법이다.

고등학생 C군도 SNS를 통해 각기 다른 피의자 7명으로부터 189만원을 빌렸다 낭패를 봤다. 연 1000%가 넘는 고금리에 C군이 변제한 원리금만 450만원에 달한다. 불법 추심에 시달리던 C군은 SPO 예방 교육을 듣고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인지해 상담을 요청했고, 그때서야 경찰의 도움을 받아 맘 편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대리입금으로 돈을 빌려주는 이들이 연 24% 이상의 이자를 받는다면 이는 대부업법 위반 행위다. 다만 10만원 이하 소액은 법정 최고금리 적용을 받지 않아 10만원 이하의 돈 거래에서는 이자가 얼마든 처벌이 불가능하다. 대리입금은 법의 허점을 노린 수법인 셈이다. 단, 이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영업행위를 하면서 금융감독원에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대부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대리입금은 신고가 지지부진해 피해현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소액인 데다 자신이 돈을 빌리고 갚지 못했다고 여겨 10대들이 주위에 알리려 하지 않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학교에 금융교육을 나가 보면 대리입금 관련 이야기가 가끔 들리는데 워낙 학생들 내부의 일이라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선생님들도 잘 모르는 일이다 보니 이런 문제에 접근할 때는 상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도 지난해 5월 한 달간 ‘고금리 대출 피해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하는 등 대리입금 근절을 위해 애썼지만 여전히 온라인엔 청소년을 노리는 불법대출이 만연하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까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불법 금융행위 자동적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으나 예산 문제로 아직까지 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불법대출 게시물을 걸러주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 보니 청소년들은 오늘도 불법 대리입금에 손을 대는 실정이다.
◆“금융에 무지한 청소년… 금융교육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금융지식이 없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며 금융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한국갤럽과 함께 진행한 ‘금융교육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 정규교과 시간 중 금융교육 시간은 연평균 8.9시간에 불과하다. 그나마 있는 교육시간도 교사가 금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보니 교육이 부실하다.

한 교사는 “금융까지 가르치기에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이 너무 광범위해서 수업하기가 좀 어려운 것 같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수능에 나오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는 행태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또 다른 교사는 “애들은 시험에 안 나오면 편하게 수업하고 편하게 끝내려고 하지 죽자 사자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금융교육의 현실을 전했다.
금융교육이 학생에게 도움되지 않는다고 답한 교사들은 그 이유로 ‘실생활과의 연관 부족(58.8%)’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이외에도 금융교육이 이론에 치중돼 있다(17.6%), 학생들이 관심이 없다(11.8%), 초중고 금융교육이 연결되지 않는다(5.9%) 등의 답변이 나왔다.
송재룡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대리입금을 통해 음성적으로 채무관계가 형성되는 게 불합리한 것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금융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며 “교육이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밝혔다. 이어 “학교 내에 상담 자격이 있는 전문가들이 많이 배치돼야 한다”며 “그래야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경청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1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은 법정 최고금리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소액대출에 금리 제한을 하지 않는 건 제도적 허점”이라며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교수(경제금융학)는 “사이버수사대 등에서 SNS에 해당 내용이 돌아다니는 걸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며 “각종 협회에서 이미 이런 불법광고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홍 교수는 “청소년보호법 내에 단속 규정을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봄 직하다”며 “그렇게 감시망 시스템을 강화해야 청소년 금융착취 등을 같이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재밌는 금융교육 통해 ‘신용’ 중요성 알려줘야”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모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한 학교에 금융교육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1·2학년 수백명이 모인 강당에서 강의하는데 정말 단 한 명도 안 듣더라고요. 금융이 어려운 것을 아니까 나름 쉽고 재밌게 설명하겠다며 다짐을 하고 간 자리였는데도 말입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이런 식의 교육은 안 된다.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하겠구나’ 하고요. 가장 재밌게 알려주는 것, 그게 청소년 금융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 위치한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신제윤(사진)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장은 청소년 금융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교육 자체가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2002년 카드대란 등 일련의 사건으로 금융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던 2002년 말 발족한 협의회는 학교를 돌며 방문교육을 하는 것은 물론 금융교육용 뮤지컬, 보드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19만명이 넘는 인원이 금융교육을 받았다. 협의회를 통해 금융교육을 수강한 인원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은 일반인이 느끼기에 다소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신용 관리, 노후 대비 등 현대인이 살아가는 데 금융을 빼놓을 수 없기에 금융교육은 필수다.

신 회장은 청소년들이 반드시 알았으면 하는 금융 관련 내용으로 ‘신용’을 꼽았다. 신용은 자신의 경제활동능력을 나타내주는 대표적 지표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신용을 바탕으로 돈을 빌리고, 경제생활을 영위해 나가게 된다. 신 회장은 “경제개발 시기에는 저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 저축에 대해서만 강조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대출, 자산관리 등으로 핵심사항들이 옮겨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조그마한 연체가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져 엄청난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청소년들이 금융교육을 통해 신용이 사회생활을 할 때 얼마나 중요한지 그 하나만 알아가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트위터 캡처
청소년들이 대리입금 등 불법 소액대출 유혹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불법사금융은 독버섯처럼 나타난다”며 “서민금융 등 정부의 사회안전망이 필요하지만 그런 건 결국 재정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결과적으로는 재밌는 금융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의 금융에 대한 관심을 제고해 그런 쪽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그래서 우리 협의회가 중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회장은 남은 몇 개월의 임기 동안 금융교육을 재밌게 알려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반드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기 중 뮤지컬 등을 통한 금융교육은 상당 부분 정착했기 때문에 이젠 앱 개발이 과제”라며 “교육 분야를 세분화해서 어떻게 콘텐츠를 알차게 만드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선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관심을 제고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그래야 자연스레 학생들도 금융지식을 쌓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역설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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