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식습관을 바꾼 코로나

박은경 베이징 특파원 입력 2020. 5. 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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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식습관은 1인분씩 나누어 따로 먹는 분찬제(分餐制)가 아니라 함께 나누어 먹는 공찬제(共餐制)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근감을 높이고 젓가락으로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호의를 표현했다.


베이징의 대표 먹자거리인 구이제는 입구부터 매운맛이 난다. 맵고 얼얼한 마라 양념을 한 샤오룽샤(小龍蝦·민물가재) 전문식당이 줄줄이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후다판관(胡大飯館)이다. 구이제 거리에만 본점과 4개 분점이 있는데, 식당 앞 간이의자에 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기다리는 대기행렬이 장관일 정도다.

코로나19 이후 후다판관에는 새로운 안내문이 붙었다. ‘고객들이 편의를 위해 서빙용 공용 젓가락과 숟가락을 특별히 준비했다’는 내용이다. 서빙용 수저에는 ‘공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외관상으로도 구분이 쉽도록 색깔도 다르게 했다.

샤오룽샤는 대표적인 ‘나눠 먹는 음식’이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커지면서 커다란 접시에 나온 빨간 샤오룽샤를 비닐장갑 낀 손으로 집어 먹는 대신, 공용 수저로 개인 접시에 덜어낸 후 먹는 방식을 권장하고 있다. 후다반점의 궈둥 총경리는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1인용으로 덜어 먹는 분찬제(分餐制) 실시에 대한 고객 반응이 좋다”면서 “코로나19로 크게 줄었던 고객이 (분찬제 실시 후인) 노동절(5월 1일) 연휴 동안 60∼70%까지 회복됐다”고 했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중국 각 지역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공용 수저 사용하기 운동이 진행 중이다. 중국문명망



코로나19가 가져온 ‘공용 젓가락 운동’

베이징 거리에는 ‘새로운 포스터’가 붙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몇 달간 베이징 거리를 차지한 것은 ‘마스크 착용, 자주 손 씻기, 충분히 환기하기’ 같은 구호가 적힌 붉은 현수막이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공용 젓가락 행동’ 포스터가 더해졌다. 베이징시에서 공용 젓가락(共箸)과 국자를 사용해 안전하고 건강한 식사 습관을 정착시키자는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시는 공용 젓가락과 국자 사용 등을 규정한 ‘문명행위’ 조례를 오는 6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베이징시뿐 아니라 하이난(海南)·저장(浙江) 등 다른 지역에서도 ‘공용 젓가락 운동’이 진행 중이다.

공용 수저 쓰기를 독려하는 포스터. 중국문명망(좌)/ 인민망(우)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아예 입법까지 추진되고 있다. 중국 최대 연례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5월 21일 개막한 가운데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회격)에서 관련 안건이 제출될 전망이다. 전인대 대표인 허쉐빈(何學斌)은 5월 19일 <신경보>와 인터뷰에서 이번 양회에서 ‘분찬제 입법을 통한 건강하고 간소한 생활 방식 도입에 관한 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허 대표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이후 정부 행사에서 분찬제를 실시하면서 여러 식당과 기업에서도 분찬제를 도입했지만, 공찬제 전통이 너무 강해 자리 잡지 못했다”면서 “식사 방식의 역사적·근본적 전환은 입법이라는 강제적 장치 없이는 실행되기 힘들다”고 했다.

중국의 식습관은 1인분씩 나누어 따로 먹는 분찬제(分餐制)가 아니라 함께 나누어 먹는 공찬제(共餐制)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근감을 높이고, 젓가락으로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호의를 표현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공찬제가 친근감과 호의보다는 감염 위험을 높이는 방식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

지난 2월 홍콩에서 훠궈(火鍋·중국식 샤브샤브)를 같이 먹은 일가족 19명 중 10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일도 있다. 큰 냄비에 육수를 끓여 육류나 채소를 살짝 담가 익혀 먹는 훠궈는 대표적인 ‘같이 먹는 음식’이다.

지난 4월 항저우(杭州) 질병예방통제센터 실험 결과 여러 명이 함께 식사하면서 공용 젓가락을 쓰지 않고 음식을 나눠 먹으면 공용 젓가락을 쓰는 것에 비해 남은 음식에서 검출된 세균이 최대 250배 많았다. 실험 참가자들은 새우·생선·오이 등 6가지 음식을 주문해 공용 젓가락을 사용했을 때와 사용하지 않았을 때 식사 후 남은 음식의 세균을 48시간 배양한 뒤 측정했다. 6가지 음식 모두 공용 젓가락을 쓰지 않은 쪽의 세균이 공용 젓가락을 쓴 쪽보다 많았고, 세균 수는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250배까지 차이 났다.

중국 경찰이 ‘공용 젓가락 운동’ 포스터를 벽에 붙이고 있다. 국가질량신문망



1000년 식습관 ‘공찬제’, 법으로 바뀔까

젓가락은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좋은 운반체로 꼽힌다. 실제로 코로나19는 함께 식사하는 과정에서 전파되는 사례가 많았다.

허쉐빈 대표는 “젓가락으로 옮겨진 타액을 통해 감염병뿐 아니라 위염·위궤양·십이지장궤양·B형 간염 같은 질병이 옮겨지고 있다”면서 “공찬제는 현대 문명과 어울리지 않는 역겨운 낡은 관습”이라고 지적했다.

공찬제가 바이러스 전파뿐 아니라 음식 낭비도 조장하고 있는 지적이 나온다. <신경보>에 따르면 연간 중국의 식탁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등 낭비는 1700만~1800만 톤이며 금액으로 환산하면 2000억 위안(약 34조5560억원)에 달한다. 공찬제가 식사량을 고려하지 않고 체면치레를 위한 과도한 주문을 부추겨 낭비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공찬제를 중국 전통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나온다. 진한시대와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분찬제였는데, 송나라 이후 유입된 북방 유목민족들이 공찬제를 들여와 이후 정착됐다는 것이다.

사스 이후 십수 년 동안 중국은 끊임없이 분찬제 도입, 공용 젓가락 사용 운동이 전개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계기로 위생 관념에도 변화가 나오고 있고, 감염 위험뿐 아니라 음식물 낭비를 조장하는 공찬제의 폐해가 부각되고 있다. 허 대표의 말처럼 ‘1000년의 식사 습관을 바꿀 최고의 시기’임은 분명하다. 베이징시를 비롯한 각 지방에서 대대적인 캠페인과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관련 법안까지 발의되는 것은 전례 없는 강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꾸지 못한다면 영영 기회를 잃어버릴 가능성도 크다. 중국인들에게 뿌리 깊게 박힌 식습관을 코로나19는 바꿀 수 있을까.

박은경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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