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욱 룩시드랩스 대표 "생각만으로 구현되는 '뇌파AR' 기기로 교육·진단·치료"

2020. 2. 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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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서 뇌 과학 연구하던 석사, 기업가 변신
뇌파 분석해 집중도, 심리상태 보여주는 VR 제작
집중력 훈련, 정신 질환 치료 등 다방면 활용 기대

영화 ‘엑스맨’의 악당 매그니토가 구가하는 무기는 염력이다. 능력을 조절할 줄 몰랐던 어린 매그니토는 분노를 느끼며 초능력을 깨웠고, 이후 자유자재로 염력을 발휘하며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다.

영화나 소설로만 접했던 염력을 실제로 구현해본다면 어떨까. 이왕 상상한 김에 초능력을 더 길러 루벤스, 라파엘로의 그림 속 ‘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 같은 활약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마침 룩시드랩스(대표 채용욱)의 가상현실(VR) 기기는 이 같은 호기심을 해결해준다. 염력을 발휘하고, 용과 싸우는 내 모습을 눈 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록시드랩스 채용욱 대표가 컨트롤러 센서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뇌파를 이용한 VR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룩시드랩스의 VR은 뇌파를 감지해서 눈에 보이는 영상으로 구현해준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손에 컨트롤러를 잡고 마구 휘젓지 않아도 물건을 들어올릴 수도, 용에게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영화 속 매그니토처럼 정신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룩시드랩스의 VR은 컨트롤러의 센서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뇌파’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링크’, ‘바이브 프로’, ‘오큘러스’ 등 룩시드랩스가 개발한 기기는 뇌파를 감지해서 눈에 보이는 영상으로 구현해준다. 여기에는 세 가지 단계가 동원된다. 착용하면 이마쪽에 닿는 뇌파 센서가 사용자의 뇌파 상태를 바로 측정한다. 룩시드랩스는 정확한 분석을 위해 시선추적 장치도 탑재했다. 사용자의 시선과 뇌파에 대한 정보는 인공지능(AI)이 분석해서 스트레스 상황인지, 인지 기능이 어떠한지를 판별한다. AI가 해석한 사용자의 상태는 눈 앞의 영상으로 바로 펼쳐진다. 시선 정보나 뇌파의 파동을 바로 볼 수도 있고, 집중도(attention)나 안정도(relaxation)를 0부터 100까지의 숫자로 바꿔 보여주기도 한다.

룩시드랩스 채용욱 대표가 뇌파 VR을 시연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단순히 집중 상태를 숫자로만 보여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도 즐길 수 있다. 룩시드랩스는 AI가 해석한 뇌파정보를 API를 통해 콘텐츠에 연결, 게임 형태로 풀어냈다. 상자 올리기 콘텐츠에 접목하면 사용자의 집중도에 따라 바닥에 있던 상자들이 하늘 위로 떠오른다. 다른 게임에서는 사용자의 집중력에 따라 불덩이가 커지고 이를 용에게 던질 수 있다. 흡사 영화 속 염력 내지는 초능력을 사용자의 뇌파로 조절할 수 있는 형태다.

채용욱(38) 룩시드랩스 대표는 “이 같은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트레이닝 용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중을 하고 싶어도 어떤 상태가 집중인지 잘 모르잖아요. 집중한 상태라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스스로 이렇게 하면 집중할 수 있구나 하는걸 배워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실제 자기 뇌파를 트레이닝하고 훈련할 수 있는 겁니다.”

룩시드랩스가 뇌파를 분석해서 콘텐츠로 보여주는 것은 뉴로피드백 기법의 일종이다. 뇌파상태를 시각 자료로 보여주며 사용자가 스스로 조절하도록 유도하는 뉴로피드백은 최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에도 활용되고 있다.

채 대표는 정신질환 뿐 아니라 진단에도 쓰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시선추적과 뇌파 분석이 결합된 데이터를 분석하면 사용자가 ADHD인지 아닌지, 치매로 이어지는 경도 인지장애가 있는지 등을 진단할 수 있다. 기기이용 자체가 트레이닝의 목적을 갖고 있어서 이용자의 인지기능을 훈련하거나 ADHD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치료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집중력 트레이닝이다 보니 프로 e스포츠 구단에서 선수들의 집중력과 순발력 트레이닝에 쓰이기도 한다. 시선추적과 뇌파 분석을 통해 선수들의 운동 능력이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 데이터를 쌓고, 이를 분석하면서 맞춤형 트레이닝도 제공하는 것이다.

뇌과학 연구에는 외국기업들의 도전이 거세다. 채 대표는 “뇌파분석과 시선추적을 같이 적용한 곳은 글로벌 시장에서 룩시드랩스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룩시드랩스는 스타트업으로는 제법 탄탄한 규모인 26명의 인력풀을 갖췄다. 창업 2년여만에 누적 투자금도 45억원을 유치했다. 채 대표가 카이스트에서 쌓아온 뇌과학 분야 연구역량과 더불어 함께 대학원 생활을 했던 인적 네트워크가 바탕이 됐다. 룩시드랩스 관계자는 채 대표의 SCI 논문은 인용 수가 160건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룩시드랩스는 채 대표의 ‘두번째 자식’이다. 지난 2013년에 와이브레인으로 첫 창업을 시도했다. 미세한 전류로 뇌 질환을 치료하는 와이브레인 역시 뇌 과학 기반 스타트업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냈지만 채 대표의 성에 차지 않았다. 채 대표는 영화 ‘아바타’에서 영감을 받아 뇌파와 AI를 결합해 사람의 생각을 읽고, 생각대로 로봇 등을 움직이는 등의 연구에 집중해왔다. 전공을 살려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4년여만에 와이브레인을 나와 두번째 창업에 도전했다.

채 대표는 창업은 너무 힘들어서 다시 못할 일이라 손사래를 쳤다. “창업하고 나서 주말에 편히 쉰 적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불안하고 긴장이 됩니다.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게 스타트업이라는데, 반대로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거예요. 특히 저는 연구만 하던 사람이라 경영을 전혀 몰랐거든요. 처음 창업했을 때 직원들 월급은 계좌에서 그냥 이체하면 되는지, 헷갈렸을 정도입니다. 저는 한 번도 월급을 누구에게 줘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두 번째 창업에서는 정부 지원이 탄탄해진 게 도움이 됐다. 채 대표는 “와이브레인 시작할 때는 생각도 못했던 팁스(민간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을 거쳤고, 정부 지원 사업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전공을 살린 창업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을까. 룩시드랩스는 해외에서 주목도 많이 받았다.

“지난해 CES에서 VR 최고혁신상도 받았습니다. 올해 초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서 ‘탑5 스타트업’으로 선정됐고 그 덕에 텍사스에서 피칭 기회도 얻게 됐죠. 무엇보다 제 전공이고 꿈이었던 것을 실제로 구현해 시장에 내놨다는게 가장 기뻐요.”

룩시드랩스의 VR기기는 B2C 뿐 아니라 B2B 플랫폼도 가능하다는게 장점. 일본의 게임 개발회사가 링크 플랫폼에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이야기를 보태 초능력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유럽의 시니어케어 회사는 링크를 활용해 치매 환자들의 치료와 진단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넥스트어스가 링크를 활용, 소방관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을 치료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정신질환 진단, 치료 분야에서 쓰임새가 많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규제 환경 때문에 활용이 제한적이다.

채 대표는 “데이터 3법이 통과되면서 VR에 대해 의료기기 품목허가는 이뤄졌지만, 아직 VR의료기기 가이드라인 자체가 없다”며 “VR 같은 새로운 장비에 대해 어떤 규격이어야 의료기기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안전성이나 유효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는게 시급하다”고 전했다.

미국은 지난해 FDA에서 VR의료기기를 승인했다. 미국을 상대로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 다툼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중국도 VR의료기기에 관한 규제를 마련했다.

채 대표는 “가이드라인을 빨리 마련해 적어도 2년 안에는 제품이 활용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실제 사용경험(레퍼런스)이 쌓일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미국이나 중국에 계속 주도권을 뺏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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