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사 9인 비방 문건까지 등장, KT회장 공모 잡음

성호철 기자 2019. 11. 5. 03: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6장짜리 정체불명 문건 나돌아
KT 현직들은 등장하지 않아.. 외부 후보자 흠집내기 정황
과거행적·동향 등 꼼꼼히 묘사.. 내부에서 작성됐을땐 큰 파장

12위 대기업인 KT그룹의 차기 회장(CEO·최고경영자) 선정 경쟁이 선을 넘고 있다. 5일로 예정된 KT 지배구조위원회의 회장 후보 공모 마감 직전, 주요 후보자의 실명(實名)과 함께 집요하게 비난하는 정체불명의 문건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KT는 예전에도 각종 잡음에 시달리곤 했지만, 이번엔 유력 후보 없이 10여 명의 후보자가 난립하면서 그 정도가 심한 상황이다.

4일 본지가 확보한 문건은 제목이 없는 6장짜리로, 김진홍·김태호·노태석·서정수·이상훈·유영환·임헌문·전인성·최두환(가다나순) 9명의 고향·나이·학력과 주요 이력, 평가가 실려 있다. 지난 주말에 KT 내부는 물론이고 일부 여권 인사들과 사외 이사들, 일부 후보자 사이에 돌았던 것으로 보인다.

KT 사정에 대해 잘 아는 한 인사는 이 문건을 보고 "쓰인 내용이 단순히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고는 작성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두 명이 아닌 별도 팀이 수개월간 팩트(fact·사실)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뒤 악의적인 평가를 교묘하게 뒤섞어, 경쟁 후보자에게 불리하게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는 KT 외부 인사만 등장하고, KT의 현직이자 주요 후보자인 오성목·이동면·구현모 사장과 박윤영 부사장은 등장하지 않았다.

흑색 비방 문건까지 등장

이 문서는 주요 후보자와 관련, 회장직 적합성·과거 행적·동향 등의 항목을 나열하고 있다. 내용은 적나라하고 직설적이다. 일부러 여권 인사나 사외 이사들이 봤을 때 거부감을 느끼도록 작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한 후보와 관련해선 "박근혜 정권 때 청와대 실세의 후원으로 KT 회장으로 선임된 것이 확실시돼 임원 인사안까지 준비했으나, 발표 하루 전 뒤바뀌었다. 현재는 A씨 등 부산 인맥을 동원해 친문 실세에 접근하고 있다"는 식이다. 또 다른 후보는 "현재 청와대에 있는 같은 대학 과선배인 모 실장이 밀어주고 있다. 그런데 부인은 박근혜 대통령 때 고위직이었다"라고도 썼다. 한 후보에 대해선 "2008년에 KT를 퇴사했다가 (이명박 정부 때) 고등학교 동창인 B씨(청와대 고위직) 추천으로 사장으로 복귀했다"고 적시했다. 결국 '전(前) 정권 때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취지다.

능력을 폄훼하는 노골적인 표현도 적지 않다. "○○○(해외 국가) 사업 책임자로 나갔을 때 대형 손실도 사업 감각과 유연성 부족 때문" "KT 임원 경력 중 대부분을 대외 업무에서 보냄" "○○○○(국가 연구기관) 원장 재직 시 기관장 평가 D등급 받았다" 등이다. 심지어 'KT 내 한 파벌의 수장' '카멜레온'과 같은 원색적인 표현도 있다.

KT 전·현직 간 차기 회장 경쟁

문건엔 KT 현직 사장·부사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문건의 출처는 불확실하지만 만약 KT 내부일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전망이다. KT 조직이 외부 후보자 흠집내기에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되기 때문이다. KT 안팎에선 "황창규 회장은 줄곧 '능력 있는 후임자'를 원했던 만큼, 후보자 누구를 편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2만명이 넘는 KT 조직이다 보니 내부 연관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여기에 주요 후보자로 꼽히는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문건에서 빠진 데다, 그동안 한 번도 거명된 적 없는 김진홍 방통위 전 전문위원과 서정수 KTH(KT의 자회사) 전 대표가 등장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노 전 장관의 한 지인은 "노 전 장관에게 정·관계 지인들이 '혼란스러운 KT를 맡아 궤도에 올릴 적임자'라고 추천하고는 있지만, 본인은 여전히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진홍 전 위원은 KT 경영지원팀장과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 경영본부장, 한국방송공사 상임이사를 거친 인물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엔 대통령 직속의 방송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노무현 정권 때는 국무총리 산하 방통융합 법제팀장을 맡은 인물이다. 서정수 전 대표는 한국통신 공채 1기 출신으로, 재무실장·기획실장 등을 역임했다. 친(親)여권 성향의 통신·방송 전문가와 현장 경험이 풍부한 KT맨이 새로운 후보자로 부상한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KT 이사회 구성을 보면 사내 이사 3명은 물론이고 사외 이사 8명도 모두 황창규 회장 때 선임됐다"며 "어떤 형태로든 황 회장의 의중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