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모은 세계 축음기 10만점.. 일본서도 탐내죠

강릉/조유미 기자 2019. 9.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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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목 참소리축음기박물관장, 수집 60주년 기념 특별전 열어
강도 만나 부상 입고도 경매장 가 "100년 뒤 후손들도 볼 수 있길"

"몇 년 전 미국 뉴저지 에디슨시 시장이 에디슨 박물관을 짓겠다며 강릉까지 찾아왔어요. 재미있지 않나요?"

강원도 강릉 경포 호숫가에 있는 참소리축음기박물관, 에디슨과학박물관, 손성목영화박물관의손성목(76) 관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에디슨이 100년 전 만든 원통형 축음기판 1개를 선물로 가져왔던데, 제가 그랬죠. '이것 보시오. 우리 박물관엔 원통형 축음기판 수천 개가 있소'라고요."

참소리축음기박물관에서 만난 손성목 관장은 "에디슨이 1877년 만든 세계 최초의 축음기 '틴 포일' 6개 중 5개를 우리 박물관이 갖고 있다"며 "미국인들이 '이게 왜 여기 있느냐'며 깜짝 놀란다"고 웃었다. /조유미 기자

박물관 개관 45주년이자 손 관장의 수집 6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이 이 세 곳 박물관에서 열린다. '소리·빛·영상의 천국'이 주제인 이번 전시엔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뮤직박스, 에디슨 발명품 등 8000여 점과 옛 신문·잡지와 영화 포스터 1000여 점 등 총 50여만 점이 나온다. 축음기만 5000여 점인데, 그의 축음기 수집품 10만여 점 중 일부일 뿐이다. 그는 "미국, 영국, 독일에 있는 내 창고에 보관된 축음기도 들여왔다. 평생 모아온 수집품을 평가받고 싶었다"고 했다.

함남 원산에서 태어났다. 축음기와의 인연은 다섯 살 때부터다. 피아노와 전축을 좋아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방에만 틀어박힌 그를 달래려 아버지가 포터블 축음기(콜롬비아 G241)를 사줬다고 했다. "1·4 후퇴 때 피란 나오며 축음기를 둘러메고 나올 정도로 아꼈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동네 전파사를 돌며 축음기 10여 대를 모았어요. 기계마다 다른 소리가 나는 게 신기했죠."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한 건 건설업체에 들어가 5년간 중동 근무를 하면서다. 알음알음 모은 기기가 500여 점이 됐고, 세계 수집상이 모여드는 영국 소더비 경매장에서 본격적으로 물건을 구했다.

닥치는 대로 사 모았다. 아버지가 물려준 막대한 부동산까지 팔아치웠다. 그는 "경매장에서도 한국인은 처음 본다고 했다"며 "우리나라에 나만 한 사람 없겠다 싶어 박물관을 열었다"고 했다.

그가 1968년쯤 '아메리칸 포노그래프'(동전을 넣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축음기)를 구하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가던 중 강도를 만나 목숨을 잃을 뻔한 이야기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개머리판으로 왼쪽 견갑골을 맞아 뼈가 바스러졌다"고 했다. 하지만 축음기는 포기할 수 없었다. 1900년 미국에서 여섯 대를 제작했지만 현재는 한 대만 남아 있는 희귀품이었던 것. "피를 흘리며 경매장에 가자 담당자가 빼둔 물건을 내주며 다른 축음기 2대를 덤으로 줬어요. '너 같은 놈은 처음 본다'는 말을 들었죠."

이젠 경매장에 가면 한 수 접어 줄 정도다. 그는 "소더비나 크리스티에 가면 낙찰가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배려해준다"며 "내가 한 번 찍으면 값이 얼마든 가져가고야 만다는 것을 안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1986년엔 '수집광(狂)인 당신 철학에 감동했다'며 일본 내쇼날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 초청도 받았다. "도쿄 한복판에 1000평 건물을 지어줄 테니 수집품을 일본에서 전시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한국 아니면 안 하겠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고 했다.

5년 전 개관한 손성목영화박물관의 단골손님은 배우 이영애씨라고 한다.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은 촬영기를 보고 특히 감명받았다고 했어요."

그는 스스로를 '미쳤다'고 칭했다. "한번 마음에 들면 빚을 내서라도 삽니다. 자식이라 생각하면 돈 아깝지도 않아요" 수집품 놓을 자리가 없어 골동품처럼 쌓아두는 상황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지금껏 모았던 100여 년 전 축음기를, 앞으로 100여 년 이상 보관해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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