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대체 급식' 없어 점심 굶는 아이들

강현석 기자 2019. 8. 1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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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초등 급식 별도 할랄 음식 제공 안돼…교육청 “사례 없다”
ㆍ다문화가정 학생 느는데 소수자 권리 보장 외면 대책 시급

“학교에는 소수의 채식주의자, 종교적 신념 등에 의해 다양한 식사 형태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있고 이들에게 김 등 대체음식을 제공한 경우에 ‘일반 학생들이 역차별받는다’는 민원이 제기되는 등 소수학생을 위한 급식이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광주시교육청이 학교 급식을 먹지 못하고 있는 무슬림 학생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에 답변한 내용 중 일부다. ‘소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급식을 먹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는데도 교육당국이 별다른 대책 없이 외면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19일 “급식을 먹지 못하는 광주 광산구의 한 초등학교 학생 4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학생들은 지난 1학기 동안 학교에서 급식으로 제공되는 음식을 먹지 못해 점심을 굶었다. 2명은 아프가니스탄, 2명은 시리아 출신인 아이들의 종교는 모두 이슬람이다. 무슬림들은 율법이 허락한 음식만을 먹는다. 한국 유치원에 다녔던 시리아 출신 아이들은 그래도 반찬 없이 맨밥을 조금씩 먹지만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이들은 학교에서 조리한 모든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들은 점심시간 반 친구들과 함께 급식실에 가지만 제공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다. 따로 도시락을 준비해 오는 것도 아니어서 후식으로 나온 과일 등을 조금 먹는 것으로 끼니를 대신했다고 한다.

지난 1학기 이들을 지켜본 한 교사는 “아이들이 음식에 들어간 재료 성분을 확인하지 못하니까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면서 “마음껏 먹고 활발하게 움직일 때인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점심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들도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학교에 요구사항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돼지고기나 달걀 등 18가지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급식에 사용됐는지 여부를 알려주지만 이번처럼 종교적인 이유나 채식주의 등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이나 경기도 등에 알아봤는데 무슬림 아이들을 위해 별도 음식을 제공하는 학교는 찾지 못했다”면서 “인근 다른 학교에도 문의했는데 부모들이 따로 도시락을 싸주거나 아이들이 급식 중 돼지고기 등이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제공되는 급식을 가려 먹든지,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다문화가정 학생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이 같은 문제는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수의 학생이 차별받지 않도록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국내 초·중·고교에 다니고 있는 다문화가정 학생은 2018년 12만2212명으로 2012년 4만6954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은 “광주시 학생인권조례는 ‘교육감과 학교는 다문화가정 등 소수자 학생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다문화가정 증가는 사회적 흐름인 만큼 교육당국은 무슬림 아이들의 수요를 파악해 급식 개선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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