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런 사람이야" 친근함으로 다가온 트랜스젠더 유튜버

이보라 기자 2018. 8. 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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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연예인 뺨치는 인기 트랜스젠더 유튜버

지난 16일 오후 트랜스젠더 유튜버 파니씨가 유튜브 방송을 제작하는 서울 강남구 샌드박스네트워크 스튜디오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니씨의 유튜브 방송은 구독자 수가 5만명을 넘어섰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마무리하고 올게요~.” 지난 17일 밤 부산 해운대의 한 트랜스젠더 바 대기실. 트랜스젠더 유튜버 장추자씨(42·예명·본명 장성기)가 컴퓨터에서 유튜브 방송을 켜고 말을 건넸다. 메인 화면 옆 댓글창에 글들이 올라왔다. “올~ 무슨 인터뷰요?” “방송사예요?” “셀럽녀(‘유명인 여성’을 뜻하는 유행어) 장추자!”

1시간 뒤. 인터뷰를 끝낸 장씨가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왔다. “저 얼마 전에 안면 거상 성형수술 했는데 어때요? 붓기가 별로 없죠?” 장씨가 자신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다시 댓글이 이어졌다. “얼굴 너무 고급스러워요.” “어느 병원에서 했어요?”

장씨 방송이 평소와 달랐나 보다. “언니들, 오늘 기자 옆에 있다고 너무 긴장한 거 같아요.” 고정 시청자가 많다. 꾸준히 방송을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터. “욕도 안 하고 교육방송 같아요.” “기자는 언제 가요?” 댓글들이 가득 창을 메웠다. “우리 의식 안 하는데?” 장씨 옆에 앉아 함께 방송에 참여하던 국희씨(33·예명)가 말했다. “의식이 좀 되긴 되지. 너 너무 ‘업’됐어(들떠 있다는 의미). 안되겠다. 나가서 일하고 오거라.”(장씨) 국희씨가 장씨에게 등 떠밀려 나와 트랜스젠더 바 홀로 향했다. 국희씨와 장씨는 바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유튜브 방송을 한다. 8개월째다.

“호주에 살고 있는 애엄마예요. 가끔 욕하고 싶은데 말은 잘 안되고 답답함이 많이 쌓여 있는데 언니 방송 보며 욕 시원하게 날리는 모습에 스트레스 푸네요.” 다시 댓글 하나가 달렸다. 장씨가 호주에 사는 주부 댓글을 읽어내려갔다. “감사합니다.” 장씨가 화답했다.

장씨의 유튜브 세계는 한국 사회와 다르다.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찾기 힘들다. 이곳에서는 차별받지 않는다. 친구로, 스타로 대접받는다. 장씨의 구독자 수는 8만5000명. ‘꽃자’ 15만명, ‘파니’(32·예명·본명 오희나) 5만명 등 수십명의 트랜스젠더 유튜버들이 떠오르는 ‘연예인’이다. 댓글은 기본이고 후원금과 손편지, 음식, 전자기기 같은 선물을 보내며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시청자도 많다.

■ 트랜스젠더, 유튜브로 들어오다

성소수자가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온라인 방송 세계로 들어온 건 대략 4~5년 전부터다. 미미씨(26·예명)는 2014년 온라인 방송에 데뷔했다. 트랜스젠더 중 두번째다. 그는 편견이 담긴 트랜스젠더 이미지를 깨고 싶어 방송을 시작했다. “트랜스젠더가 나처럼 친근하고 먼 얘기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죠.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생기지 않게 방송에서 노력해요.”

파니씨의 방송 동기도 마찬가지다. “하리수처럼 예쁘고 걸걸하며 웃겨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저같이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그는 “자극적인 내용보다 트랜스젠더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올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씨? 별 이유 없이 시작했다. “너무 쉬는 게 무료했죠. 처음엔 방송 정지를 몇 번 당했어요. 브래지어 끈이 보인 거, 욕한 거, 별풍선 쏴달라고 말한 거 때문에(웃음). 정지를 세번 당하니까 오기가 생겼어요. 점차 사람들이 많아지니 방송을 장난처럼 하면 안되겠다는 책임감도 생겼죠.”

17일 트랜스젠더 유튜버 장추자씨(오른쪽)와 객원 유튜버 뽀뽀씨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댓글로 소통하고 있다. 17일 부산 해운대의 한 트랜스젠더 바 대기실에서 유튜브 방송을 하던 장추자씨가 객원 유튜버 국희씨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유튜버 미미씨가 21일 인천 자택에서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 20일 트랜스젠더 유튜버 파니씨의 유튜브 방송 화면에 후원금을 보낸 시청자에 대한 감사 메시지가 떠 있다(위 사진부터). 유튜브 방송 캡처·이보라 기자

국내 성소수자들 4~5년 전부터 유튜브 등 온라인 방송 진출 활발 연애·진로 속시원한 조언부터 성소수자 관련 고민도 다뤄

‘악플’은 쿨하게 응수하며 방송 트랜스젠더 편견 없애는 데 일조

온라인 방송에서 정체성을 밝히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파니씨는 커밍아웃하기 전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숨기고 ‘여캠’(여성 온라인 방송인)으로 활동했다. 방송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2015년 1월 방송에서 커밍아웃했다. “처음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커밍아웃하는 순간 제가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게 많기 때문이죠.” 자신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알리겠다고 결심했다.

커밍아웃하니 오히려 인기가 더 올랐다. 2000~3000명의 구독자는 커밍아웃 직후 1만명을 돌파했다. 지금 구독자 수는 5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파니씨는 “(여리고 청순한) 이미지에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 ‘동네 언니’ 같은 매력에 푹 빠지다

이들은 보통 다른 유튜버들처럼 매일 밤 라이브 방송을 시작해 새벽에 끝낸다. 매일 이들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장씨는 “연예인들은 드라마를 찍어야 나오고 예능 프로그램도 일주일에 한번 나오지만 우리는 매일 밤 10시 약속된 시간에 나온다. 그걸 시청자들이 고마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상 내용?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거나 시청자들이 올리는 댓글을 화제로 놓고 대화하는 식이다. 시청자들은 외모부터 연애·진로까지 여러 조언을 구한다. 이들이 전문적인 답변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은 이들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답해주는 것 자체를 즐긴다.

이날 장씨에게는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여자친구한테 차이고 일주일을 이 악물고 버티다가 비 오는 날 집 앞으로 찾아가버렸어요. 비 쫄딱 맞으면서 6시간 기다렸는데 안 나와준 건 이제 마음이 뜬 거겠죠?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고 손 떨리는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장씨는 이렇게 답했다. “(여자친구가) 마음이 떠났어요. 버스는 떠났는데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버스가 오나요? 더 좋은 여자 만나면 되지. 우리 방송에도 많잖아요.” 장씨와 함께 방송을 하던 뽀뽀씨(32·예명)가 거든다. “나랑 만날래? 나 같은 스타일을 좋아할 수도 있잖아(웃음).” 이들은 동네 언니이자 누나다. 편하게 고민을 나누고 장난을 주고받는 존재다.

트랜스젠더도 방송 주제다. 파니씨는 4세 때부터 32세 때까지 자신이 변해온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려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 파니씨는 성전환수술과 성형수술 등 트랜스젠더가 된 과정과 이후 삶도 낱낱이 공개한다.

성소수자나 이들을 자녀를 둔 부모도 종종 이들을 찾아온다. 지난 2월 장씨의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을 시작한 막내 직원 ㄱ씨의 어머니가 그랬다. 어머니는 1월 장씨의 유튜브에 들어와 댓글을 남겼다. “아들이 있는데 어느 병원에서 성전환수술을 하는 게 괜찮을까요?” 이후 ‘딸’이 된 ㄱ씨는 어머니와 함께 장씨의 바에 놀러왔고 한 달 뒤 이곳에 취업했다.

■ ‘악플’엔 ‘쿨’하게…“소통하며 좋은 기운 받아요”

‘악플’(악성 댓글)도 많다. “자궁이 없는 남자가 왜 여자인 척하냐”. 인신공격에 담담하고 우아하게 대응한다. 19일 파니씨 방송 때 “가슴이 몇 컵이냐”는 악플이 달렸다. 파니씨는 “너는 몇 센치니?”라며 아무렇지 않게 응수하고는 방송을 이어갔다. 장씨도 악플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신경은 쓰이는데 계속 신경 쓰면 나머지 몇 천명 시청자에게 실례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배제시키고 시청자들을 신경 써요. 그러다보면 까먹죠.”

‘선플’(호의적인 댓글)과 선물이 힘이다. 국희씨는 최근 성전환수술 전후에 댓글을 보며 힘을 냈다. “수술을 앞두고 불안했죠. 그런데 사람들이 말 한마디 해주고 댓글 남겨주는 게 고맙더라고요.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어요.”

팬 대부분은 젊은 여성들이다. 뽀뽀씨가 이렇게 말했다. “추자 언니가 시청자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방송에서 전해줘요. 언니가 친근한 동네 언니, 엄마 느낌이 드니까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해주는 것 아닐까 싶어요. 고민 상담을 하기 위해 방송을 보는 어린 친구들도 많죠.”

방송을 하면서 일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소망이다. 미미씨는 “별것 아닌 사람인데 방송을 통해 나 자체를 시청자들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게 좋고, 시청자들도 나에게 의지하고 위로를 받아가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전문 유튜버로 정상에 오르고 싶어 한다.

장씨가 말했다. “우울하지만은 않아요, 트랜스젠더의 삶이. 자기만 열심히 하면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어요. 지금은 게임처럼 유튜브 방송에 빠져 있어 재밌어요. 예전에는 가게에 잘 안 나왔는데 이 핑계로 매일 나오잖아. 얘네들(동료)하고 이야기하면 서로를 더 알게 되고. 시청자들도 친구 같고. 저는 해피해요. 정말 해피.”

인기 이유는 소수 취향 공감하는 공간서 “성소수자, 나와 다르지 않구나” 인식하게 해 트랜스젠더 유튜버들은 왜 인기일까? 대중문화 전문가와 여성학자는 다양성과 익명성 같은 유튜브 매체 특성이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반적인 텔레비전 방송은 불특정 다수에게 광범위하게 노출되지만 유튜브 등 인터넷은 소수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며 “보편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반감이 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트랜스젠더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도 “지상파 방송에서 나올 수 없는 ‘덕후’ 등 소수 취향을 공유하기 좋은 게 유튜브”라며 “다양성 측면에서 유튜브가 좋은 매체이기 때문에 성소수자가 인기를 끌 수 있다”고 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여성학자)은 “유튜브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특징이 있다”며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것을 드러내면 갈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익명성에 숨어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유튜버가 동네 이웃처럼 친근하고 익숙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공감을 얻은 요인으로 꼽힌다. 허 조사관은 “다수가 소수자를 혐오하는 이유는 잘 모르고 낯설다는 데서 나온다”며 “성소수자를 유튜브에서 자주 접하면서 이들을 익숙한 존재로 여기게 되면 혐오나 공포가 줄어든다. 트랜스젠더 유튜버가 인기를 끄는 현상은 이들이 대중으로부터 친근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트랜스젠더 유튜버 장추자씨(예명·본명 장성기·42)의 유튜브를 챙겨 보는 배모씨는 “장씨가 다른 방송인보다 인생 경험이 많아 고민 상담을 속 시원히 해준다”며 “무엇보다 각본 없이 자연스러운 장씨의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장씨의 유튜브를 즐겨보는 또 다른 40대 여성 ㄱ씨는 유방암에 걸려 투병 중인 상황에서 장씨 방송을 보고 힘을 얻었다. ㄱ씨는 장씨의 인스타그램에 댓글로 “6개월 전에 유방암까지 걸려 집에서 요양 중”이라며 “장씨 방송을 재밌게 보면서 우울하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다. 우울증과 싸우는 내게 큰 힘이 된다”고 적었다. 허 조사관은 “소수자 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전략은 소수자가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비슷한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하는 것”이라며 “트랜스젠더 유튜버의 부상은 소수자 혐오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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