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10대 노예"..4년간 끓는 물 학대에 돈까지 갈취

백경열 기자 입력 2018. 5. 16. 18:59 수정 2018. 5. 1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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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북 영천에서 한 10대 남성이 40대 여성으로부터 상습 폭행당하고 4년 간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빼앗겼다는 의혹이 나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ㄴ씨에게 최근 ㄱ씨가 보낸 문자메시지 일부. ㄴ씨에게 현재 그가 일하는 식당에 출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2시쯤 영천의 한 아파트에서 ㄱ씨(40·여)는 함께 살던 ㄴ씨(19)의 몸에 여러 차례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힌 혐의(상해)를 받고 있다. 얼굴과 팔, 다리, 가슴 등에 2도 화상을 입은 ㄴ씨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영천 지역 종합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부상 정도가 심해 현재 대구에 있는 한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ㄴ씨와 그의 지인 등을 상대로 탐문 수사에 나선 경찰은 ‘충격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ㄴ씨는 어떤 일을 겪어온 걸까?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ㄴ씨에게 최근 ㄱ씨가 보낸 문자메시지 일부. ㄴ씨에게 현재 그가 일하는 식당에 출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4년 넘게 일하고도 월급은 커녕 맞기만”

2011년 5월 ㄴ씨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숨지면서 ㄴ씨는 집을 떠나게 됐다. 당시 12살이던 그에게는 5살 터울의 누나와 어머니가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자주 봐온 ㄱ씨 부부가 ㄴ씨에게는 더 편했다. 이후 어머니는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고 병원 등을 전전하며 생활했고, 누나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 대구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연락이 끊어지게 됐다. ㄴ씨는 “가족 간 사이가 너무 좋지 않았고,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함께 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ㄱ씨의 남편(47)은 숨진 ㄴ씨 아버지와 군대 생활을 함께 하고, 나란히 덤프트럭 운전대를 잡고 전국을 떠돈 ‘절친’이기도 했다. 그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이들을 ‘삼촌’ ‘이모’라고 부르며 따랐다. 자녀가 없던 ㄱ씨 부부는 ㄴ씨를 동거인으로 등록하고 집에서 머물게 했다.

ㄱ씨 부부는 2014년쯤부터 영천에서 치킨 판매점을 운영하며 ㄴ씨에게 일을 돕도록 했다. ㄴ씨는 매일 5시간가량 홀서빙 일을 도왔다. 그는 “공부에 흥미가 없어 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했다”면서 “치킨집은 1년 정도 영업한 뒤 문을 닫았고, 돈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폭행이 시작된 건 이 때다. 그는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한다” “아르바이트 휴무일을 바꿨다” 등의 이유로 ㄱ씨에게 수시로 맞았다.

처음에는 나무 막대로 손바닥을 몇 대 때리는 수준이었다. 이후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거나 주먹으로 몸을 때리는 일이 하루를 멀다하고 반복됐다. 심지어 쇠망치·옷걸이·빨래건조대 등도 구타 용도로 쓰였다. ㄱ씨가 휴대폰 충전기 선을 들고 채찍처럼 몸을 내려치기도 했다는 게 ㄴ씨의 주장이다.

ㄴ씨는 “하루는 내 머리 위에 옷가지를 올려두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머리카락이 탈 뻔한 적도 있다”면서 “지난달 말에는 따로 나가서 살겠다는 말을 꺼냈다가 마구 맞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ㄴ씨가 몸 담았던 한 가게의 사장은 ㄴ씨의 상처를 휴대전화로 찍어두는 등 구타 흔적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ㄴ씨에게 최근 ㄱ씨가 보낸 카톡 메시지. 본문 중 ‘연금은 빚을 갚는데 쓰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ㄴ씨는 5년째 식당에서 일을 해 왔지만 월급을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 ㄴ씨 명의의 통장과 체크카드를 ㄱ씨가 관리했기 때문이다. ㄴ씨는 ㄱ씨 부부가 가게를 접자, 곧바로 인근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매일 4시간씩 약 2년 동안 일하는 사이 매달 70만 원이 통장에 입금됐다. 지난해 초에도 아르바이트로 약 160만 원을 받는 등 일을 쉰 적이 없었지만 용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일주일에 하루인 휴무일, ㄴ씨는 대부분 집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다가 군것질 거리가 생각날 때는 ‘이모’에게서 1만~1만5000원을 받아 쓸 뿐이었다. 이렇게 받은 돈이 한 달 평균 4만~5만 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ㄴ씨는 “가족이니까…”라고 생각하며 버텨왔다.

ㄴ씨가 가족이라고 믿었던 ㄱ씨 부부에게는 또 다른 ‘수입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ㄴ씨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매월 약 150만 원의 유족연금이 나왔지만, ㄱ씨 부부가 가로챈 의혹이 짙다. ㄴ씨는 “‘이모’가 생활비에 보태거나 빚을 갚는 데 연금과 내 월급을 쓰겠다고 통보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16일 대구 지역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ㄴ씨의 모습. 그는 얼굴과 팔, 다리 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끓는 물을 몸에 끼얹은 ‘이모’…“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다”

ㄴ씨는 ‘사건’이 있었던 지난 13일 늦은 밤부터 14일 새벽 시간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떨린다. 그는 13일에도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에서 몸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밤 늦은 시간까지 일한 뒤 오후 10시20분쯤 집에 돌아왔다. ‘이모’는 다음 날 오전 1시쯤 술에 취한 채 집에 돌아왔다. ㄱ씨를 부축해서 함께 온 ‘삼촌’은 택시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집에 돌아온 ㄱ씨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대며 또 다시 ㄴ씨를 때리기 시작했다. 폭력을 멈출 해명거리를 떠올리지 못한 ㄴ씨는 여느 때처럼 맞을 수밖에 없었다.

ㄱ는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렌지 위에 올린 채 불을 켰다. 라면 3~4개를 끓여먹을 수 있을 정도의 제법 큰 냄비였다. “이 시간에 음식을 만드시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ㄴ씨는 생각했다. ㄴ씨는 화가 난 ㄱ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가 시킨대로 거실 바닥을 걸레로 닦기 시작했다.

물이 끓기 시작했다. ㄱ의 언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물이 끓는 걸 왜 알려주지 않았어?”라면서 그는 화를 냈다. ㄴ씨는 화장실로 끌려갔다. 변기와 세면대가 전부인 약 6.6m(2평) 규모의 화장실 안에서 무차별 구타가 시작됐다. “잘못했다”는 ㄴ씨의 외침도 소용 없었다.

ㄱ씨는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냄비를 화장실로 들고 왔다. 이어 ㄴ씨의 하체에 그 물을 뿌렸다. ㄴ씨의 왼쪽 허벅지가 빨갛게 달아 올랐다. 폭행도 계속됐다. ㄴ씨 입술에서 터져나온 피는 화장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튀었다. 세면대와 벽 사이에 낀 채로 도망갈 곳을 찾지 못한 그는 구타를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ㄱ씨는 또 다시 뜨거운 물을 ㄴ씨의 몸을 향해 뿌렸다. 이번엔 ㄴ씨의 얼굴과 팔, 가슴 부위에 상처가 남았다. ㄱ씨는 다른 냄비를 하나 더 꺼내서 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이 물을 몸에 끼얹으면 용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던 ㄴ씨는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냄비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ㄱ씨는 또 다시 주먹 등으로 ㄴ씨를 때렸고, ㄴ씨의 몸에 끓는 물을 한 번 더 뿌리고서야 폭행을 멈췄다. ‘이모’는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다”라고 말하며 방에 들어갔다.

폭력이 멈춘 후 ㄴ씨는 찬물로 몸을 씻었다. 온 몸이 쓰라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사이 ㄱ씨는 잠이 들었다. ㄴ씨는 여기저기 물집이 잡히고 수포가 생긴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는 끝없이 흘러나오는 진물을 휴지로 닦으며 ‘또 다시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당장 도움을 청할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중학교를 마친 후에는 식당에서 일을 한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ㄴ씨는 지난 14일 오전 4시쯤 자신이 일하던 식당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ㄴ씨가 평소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장은 차를 몰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ㄴ씨는 지갑과 핸드폰만 챙긴 채 잠옷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고 집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7년 만의 첫 용기였다.

16일 대구 지역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ㄴ씨의 모습. 그는 얼굴과 팔, 다리 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이모 처벌해 달라”…경찰, “상습 상해·폭행 혐의 등 적용 검토”

숨진 ㄴ씨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던 ‘삼촌’은 지난 15일 오후 대구를 찾아 ㄴ씨를 만났다. 그는 “없던 일로 하자” “통장 등을 다 돌려주고 원하는 대로 독립하도록 해 주겠다” “(보도된) 기사를 없애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해 달라” 등이라고 말했다. ㄴ씨는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었다.

ㄴ씨는 웃음소리 가득한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그는 “아버지는 생전에 어머니와 자주 다투셨고, 비교적 화목하지 못한 편이었다”면서 “아버지와의 이별도 너무나 갑작스러웠다”고 회상했다. 2011년 어버이 날인 5월8일, 중장비 기사였던 ㄴ씨의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중학교 1학년생이던 ㄴ씨는 담임 교사에게서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아침에 미처 가슴에 달아들이지 못한 카네이션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찰은 최근 대구에 머물고 있는 ㄴ씨 어머니와 누나를 불러 조사를 벌였다. 또 ㄴ씨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한 뒤, ㄱ씨 등을 불러 각종 의혹에 대해 캐묻는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ㄱ씨 등에 대해 상습 상해 및 폭행 등의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ㄴ씨는 “지금껏 나 혼자서만 (ㄱ씨 부부를)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면서 “잘못에 대해 처벌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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