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그 문제적 장면을.. 때려달라는 박나래, 어이없다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개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된 지 오래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재미'다. 언젠가부터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그 치열함을 잃어갔고,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전성기 시절의 KBS 2TV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27.9%를 찍을 만큼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지만, 이제 두 자릿수 시청률은 꿈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후발 주자로 제법 인기를 끌었던 tvN <코미디 빅 리그>(이하 <코빅>)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단지 치열함의 문제는 아니다. 개그 프로그램들이 재미가 없어진 이유 말이다. 오히려 '불편함'이 더 핵심적이다. 옛날에는 신체와 외모의 차이를 희화화 하더라도 웃어 넘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비하가 포함돼 있더라도 쉽게 눈치채지 못했고, 설령 그런 부분이 있어도 '웃기면 된다'라는 대전제 앞에 모른 체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조금씩 진일보했다. 인권 의식이 성장했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확장됐다. 또, 더 이상 외모와 신체를 웃음의 소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시각이 성숙돼 갔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반면, 개그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다. '어떻게든 웃기면 된다'는 저급한 사고를 공유하고 있다. 조롱과 비하, 무지함과 저속함을 웃음으로 착각한 채 매몰돼 있다. 발전이 없는 개그에, 외면은 당연한 결과다.
<나의 아저씨> 패러디한 <코빅>에 담긴 의미
"비록 개그 소재라 하더라도 소수자 인권과 양성평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의 외모를 개그 소재로 삼아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이 반복될 경우에는 법정제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방심위의 의견이었다.
여러 차례 혼이 났지만 <코빅>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5월 27일, 6월 3일 방송된 '이별여행사'라는 코너를 들여다보자. 박나래는 극중에서 이용진의 전 여자친구 캐릭터 역할을 이어나갔는데, 이번에는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여자 주인공 이지안(아이유)으로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이용진은 박나래를 허언증 환자 취급했고, 박나래는 이용진에게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을 따라하자며 졸랐다.
결국 박나래는 경찰에 체포당했고 그 죄목은 '구타유발죄'였다. 박나래가 배를 맞는 장면을 보여주고 그 뒤에 환하게 웃는 여성 관객을 배치하기까지 했다.
데이트 폭력 연상하게 하는 장면, 문제의식 없었나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박나래를 비롯한 여성 코미디언들의 처지다. 박나래는 MBC <나 혼자 산다> 등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에 출연해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유쾌한 싱글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늘 '예쁘지 않은 여자'라는 캐릭터에 한정 돼 외모 지상주의를 이용한 개그만 선보인다는 점이다.
이건 박나래만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비하하고)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제작진의 나태한 인식에 화살을 돌려야 한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과거에 비해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방송 시간, 아이디어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사회적 의식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 낮은 개그의 질이 그 첫 번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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