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Talk] "애국하러 천릿길 왔는데.." 평창 셔틀 기사들의 한숨
송지훈 2018. 2. 2. 07:15
며칠 전 국제방송센터(IBC)로 가는 셔틀버스에서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이것(운전)밖에 없어서 천릿길을 달려왔다”며 껄껄 웃으시더군요.
이후에 들은 이야기는 귀를 의심할 수준이었죠. 자그마한 방에 2층 침대 두 개를 들여 4인 1조로 생활하는데, 숙소동 전체가 조립식 가건물이라 방음이 전혀 안 된다고 합니다. 복도에서 걸어가는 소리는 물론, 옆 방 사람이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소리도 생생히 들릴 정도라네요. 숙면을 취해야 할 취침 시간에 다른 기사들 출ㆍ퇴근 준비하는 소리에 깨기 일쑤라고 했습니다.
숙소 관리가 엉망이라는 하소연도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25일에 문을 연 이후 단 한 번도 청소가 이뤄지지 않았다더군요. 기사님이 스마트폰으로 찍어놓은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화장실 휴지통을 비롯해 건물 내 모든 쓰레기통 주변에 쓰레기가 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기사님은 “생활은 불편하지만 올림픽 이후 철거할 건물이니 숙소 방음 문제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 “다만 청소는 주기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위생은 기사들의 컨디션과 직결되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식사 문제에 대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좋은 음식은 바라지도 않는다. 반찬 중에 김치 한 가지는 매일 꾸준히 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더 이상 일을 못 하겠다”며 발끈한 기사님들도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던 중에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앞서 소개한 기사님이셨는데 “근무를 모두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보니 청소가 되어 있더라”며 “역시나 기자가 취재를 시작하니 뭔가 달라진다”며 껄껄 웃으셨습니다. 자원봉사자와 셔틀버스 기사의 처우 문제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용을 절감해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에 앞서 ‘기본을 지킨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요. 평창=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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